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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osts on BEOT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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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Recent content in Posts on BEOT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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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은 화면, 작은 영화</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blue-jay/</link>
      <pubDate>Tue, 01 Jul 2025 2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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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blue-jay-1.webp&#34; alt=&#34;Blue Jay&#34;&gt;&lt;/p&gt;&#xA;&lt;p&gt;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다. 둘은 한때 연인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고, 동네를 산책하고, 멈춰 서고, 다시 걷고, 낡은 집에 들러 추억을 꺼낸다.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다가도 투닥거리고, 종종 솟아오르는 어색한 공기에 침묵하다가도, 금세 소꿉놀이를 하고 신나게 춤도 춘다. 그러다가 울먹이고, 울부짖는다. 두 사람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lt;/p&gt;&#xA;&lt;p&gt;캐릭터 스터디를 하듯 두 인물로 한정된 캐스팅, 고향 동네에서의 하루라는 시공간, 7일의 제작기간과 즉흥 대본, 80분이라는 러닝타임까지&amp;hellip; 90년대 인디 영화의 워키토키 정서가 떠오르는 &amp;lt;블루 제이&amp;gt;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휘황찬란한 눈요기가 없다. 물론 주연 마크 듀플라스와 사라 폴슨의 호연이 빛나지만, 인물들이 걷고 말하고, 가끔 침묵함으로써 여백을 채우는 단순한 리듬과 정서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는 성급하거나 자극적이기보다 감정의 결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시종 섬세하고 차분히 호흡하는데, 흑백 화면 사방에 녹아든 이 살아있음의 서정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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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과 밖의 적대자</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the-eternaut/</link>
      <pubDate>Wed, 25 Jun 2025 23:2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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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the-eternaut-1.webp&#34; alt=&#34;The Eternaut&#34;&gt;&lt;/p&gt;&#xA;&lt;p&gt;K-콘텐츠로 넘쳐나는 한국에서는 조용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amp;lt;영원한 항해자 에테르나우타&amp;gt;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발간된 전설적인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2025년 4월 30일에 공개되어 87개국에서 관람 1위를 차지하였으며,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한 자연 재난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에서는 스페인어 콘텐츠가 큰 반응을 얻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데(&amp;lt;종이의 집&amp;gt; 정도가 드물게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어가 쓰이는 데다가 제작 국가와 이야기 배경이 한국 사람에게는 콘텐츠 변방인 아르헨티나인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어둠 속에서 믿기</title>
      <link>https://beott.kr/posts/choice/the-three-body-problem/</link>
      <pubDate>Wed, 28 May 2025 2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choice/the-three-body-problem/</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choice/the-three-body-problem-1.webp&#34; alt=&#34;The Three-Body Problem&#34;&gt;&lt;/p&gt;&#xA;&lt;p&gt;세상이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은, 서사 창작자로서 숨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습관적인 태도다. 그 생각에 사로 잡히다보면 내가 마치 사당은커녕,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종교의 유일한 사제가 된 것 같다. 종교에 대한 비유를 든 것은, 창작을 대하는 진지한 나의 태도를 생색내기 위함은 전혀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유지하는데 그런 믿음이 필요하게 돼버렸다. 그 믿음이란 곧 &amp;lsquo;나는 좋은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고,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다&amp;rsquo;는, 어딘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가끔은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주 성공하거나 아주 실패한 창작자가 왜 쉽게 괴물이 되는지도 조금 이해가 된다. 극단적으로 강한 믿음이나, 외부에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해로운 존재가 되기 쉽다. 다행히도 나는 쉽게 감탄하고 믿는 유형의 인간이라, 양질의 대중 서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SF (이 글에서는 &amp;lsquo;과학소설&amp;rsquo;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겠다)에는 그런 이야기가 아주 많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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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라진 남성, 남아있는 여성</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dude/</link>
      <pubDate>Mon, 26 May 2025 18: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recommend/dude/</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dude-1.jpg&#34; alt=&#34;Dude&#34;&gt;&lt;/p&gt;&#xA;&lt;p&gt;극의 중요한 축인 토마스(오스틴 버틀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amp;lt;녀석들의 졸업백서&amp;gt;(이하 &amp;lsquo;졸업백서&amp;rsquo;) 에는 곳곳에 죽음이나 부재가 도사린다. 하이틴 로맨스 장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단어들은 영화를 추동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물론 &amp;lt;월플라워&amp;gt;(2012)와 같은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amp;lt;졸업백서&amp;gt;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기존 하이틴 로맨스와는 다른 방식의 관람을 요구한다.&lt;/p&gt;&#xA;&lt;p&gt;&amp;lt;졸업백서&amp;gt;의 주연 4인방은 무척 이상하다. 모두 20대 후반의 배우로서, 10대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해버린 네 배우들은 천연덕스럽게도 자신을 10대라고 우기며 각자의 능수능란한 연기를 뽐낸다. 재빠르게 오가는 티키타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 순간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mp;lt;졸업백서&amp;gt;가 &amp;lsquo;사라진 남성들&amp;rsquo;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 말이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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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기와 저기의 사이에서</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hit-man/</link>
      <pubDate>Thu, 15 May 2025 10: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recommend/hit-man/</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hit-man-1.jpg&#34; alt=&#34;Hit Man&#34;&gt;&lt;/p&gt;&#xA;&lt;p&gt;이 영화는 &amp;ldquo;이 이야기는 게리 존슨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어느 정도 실화(somewhat true story)를 바탕으로 제작됐다&amp;quot;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픽션은 모두 얼마간 각색을 거치기 마련이지만, 대개는 굳이 저렇게 적나라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건만, &amp;lt;히트맨&amp;gt;은 이 자막만으로 영화의 태도라고 할지&amp;hellip; 일종의 톤앤매너 같은 것이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맞으면 &amp;lsquo;내 말 맞았지? 그렇지만 아님 말고&amp;rsquo;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왠지 그게 밉지 않다.&lt;/p&gt;&#xA;&lt;p&gt;대관절 그래서 &amp;lsquo;어느 정도&amp;rsquo; 실화라는게 무슨 말인가? 어디까지 실화라는 걸까? 나더러 이 픽션을 믿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링클레이터는 시작부터 게임을 벌인다. 그런데 이 모호함은 단점이 아니라 &amp;lt;히트맨&amp;gt;을 지탱하는 강렬한 유희적 기반이 되어준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휴식 이후의 삶</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nagis-long-vacation/</link>
      <pubDate>Thu, 08 May 2025 18:4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recommend/nagis-long-vacation/</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nagis-long-vacation-1.png&#34; alt=&#34;Nagi&amp;rsquo;s Long Vacation&#34;&gt;&lt;/p&gt;&#xA;&lt;p&gt;일본에는 &amp;lsquo;공기를 읽는다&amp;rsquo;(空気を読む, 쿠우키오요무)라는 표현이 있다. 상황이나 집단의 분위기를 섬세히 감지한 뒤, 직접적인 언어 없이 기대되는 행동을 파악하고 이에 자신을 맞추는 사회적 능력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amp;lsquo;눈치를 살핀다&amp;rsquo;에 맞닿을 테니, 특별히 일본만의 특징이라 할 필요는 없겠다. 유목과 개척 중심으로 발달해온 서구권과 달리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에 기반했던 동아시아에는 일찍이 협동이라는 긴장 섞인 특징이 개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현대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눈치를 읽고 공기를 읽는 능력은 경우에 따라 중요한 사회적 덕목으로도 여겨진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야만의 두 얼굴</title>
      <link>https://beott.kr/posts/recommend/see/</link>
      <pubDate>Mon, 28 Apr 2025 22:2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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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recommend/see-1.webp&#34; alt=&#34;See&#34;&gt;&lt;/p&gt;&#xA;&lt;p&gt;애플티비의 &amp;lt;씨 : 어둠의 나날&amp;gt;(이하 &amp;lsquo;어둠의 나날&amp;rsquo;)은 인간의 시각 능력이 소멸해버린 세계를 재현한다. 갑자기 모든 인류가 바이러스에 걸려 시력을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나 시력 자체가 그저 미신이 되어버린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각의 부재로 인해 화려한 기술문명을 이룬 인류는 사라지고, 미신과 야만이 지배하는 원시적 문화가 만개한다.&lt;/p&gt;&#xA;&lt;p&gt;이 시리즈의 핵심은 원시적 문화를 배경으로 시각적 무능력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스펙타클과 서스펜스다. 서로 가까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상황, 자기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처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력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 작품은 그것으로부터 우리에게 이중적 만족을 제공한다. 신적인 구경꾼으로서의 위치와 더불어, 시력을 가진 자의 우월함까지 더하는 것이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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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놀러오세요 동물의 숲</title>
      <link>https://beott.kr/posts/choice/gannibal/</link>
      <pubDate>Mon, 28 Apr 2025 22:1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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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choice/Gannibal-1.webp&#34; alt=&#34;Westworld&#34;&gt;&lt;/p&gt;&#xA;&lt;p&gt;(&amp;lt;간니발&amp;gt; 시즌1을 대상으로 한정한 글입니다.)&lt;/p&gt;&#xA;&lt;p&gt;&amp;lt;간니발&amp;gt;의 첫 장면을 장악하는 공기는 극도의 불안과 흥분이다. 불안정한 급브레이크와 함께 도착하는 경찰차, 멀끔한 제복에 어울리지 않게 길 잃은 아이처럼 흐느적대는 카노 순경의 팔다리와 방황하는 시선, 침착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아우성과 헐떡거리는 숨소리까지. 7화에 이르는 시리즈 &amp;lt;간니발&amp;gt;의 짧은 도입부는 이처럼 광기에 휩싸인 인물을 제시하며 시작부터 세계의 공기를 후끈 달궈놓는다. 이 열기를 가중하는 것은 카노의 격앙된 언행이 무색하게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저택 내부 인물들의 태도와 그로 인해 형성되는 대화불능의 긴장 상태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박훈정과 시리즈라는 이종교배</title>
      <link>https://beott.kr/posts/choice/the-tyrant/</link>
      <pubDate>Mon, 14 Apr 2025 19: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choice/the-tyrant/</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choice/the-tyrant-1.jpg&#34; alt=&#34;Carol &amp;amp; The End of The World&#34;&gt;&lt;/p&gt;&#xA;&lt;p&gt;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다가 모종의 이유 탓에 4부작 OTT 시리즈로 공개된 &amp;lt;폭군&amp;gt;은 박훈정 감독에게 어울리는 옷이 애초부터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이 아니었을지 싶을 정도의 놀라운 적합성을 보여준다. &amp;lt;폭군&amp;gt;의 이야기나 만듦새가 유별나게 탁 월해서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작품의 서사적 뼈대와 전반적 톤 앤드 매너는 박훈정 감독의 전작인 &amp;lt;신세계&amp;gt; &amp;lt;마녀&amp;gt; &amp;lt;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amp;gt;(이하 &amp;lt;&#xA;마녀2&amp;gt;)나 &amp;lt;낙원의 밤&amp;gt;, &amp;lt;귀공자&amp;gt; 등과 거의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필름 누아르의 양태를 띤 화면 속에 피를 칠갑한 인물들이 나와 SF, 하드보일드, 멜로드라마, 조폭 코미디, 홍콩 누아르 등의 요소를 혼성 모방하는 방식이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세계의 동시적인 활동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choice/carol-and-the-end-of-the-world/</link>
      <pubDate>Tue, 08 Apr 2025 19: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choice/carol-and-the-end-of-the-world/</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choice/carol-and-the-end-of-the-world-1.jpg&#34; alt=&#34;Carol &amp;amp; The End of The World&#34;&gt;&lt;/p&gt;&#xA;&lt;p&gt;지구 종말까지 7개월 남은 시점에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amp;lt;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amp;gt; (이하 &amp;lt;캐럴의 자세&amp;gt;)에는 재난 서사를 지탱하는 이론, 정치적 상황, 심지어 생존을 도모하는 인물들의 행위가 없다. 군대가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투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그뿐이다. 대다수의 인물은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아쉬움 없는 여생을 보낼 작정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 시리즈는 쾌락 및 유희와 거리가 먼 회계법인 행정 직원 캐럴(마사 켈리)의 단조로운 일상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시간의 유한성이 새삼스러워진 이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묻고 알아내라는 것. 그러면 타자와 세계,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더 깊이 사고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일단 이 접근이 시리즈를 가장 뭉클하게 감상하는 방법이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게임은 계속해야지</title>
      <link>https://beott.kr/posts/choice/pachinko/</link>
      <pubDate>Sat, 05 Apr 2025 19: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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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choice/pachinko-1.jpg&#34; alt=&#34;Pachinko&#34;&gt;&lt;/p&gt;&#xA;&lt;p&gt;사실 &amp;lt;파친코&amp;gt;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2022년 『영화부산』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 그때 나는 이 작품의 특별한 타이틀 시퀀스에 관해 이야기했다. 타이틀 시퀀스에서는 시리즈의 주요 창작자인 코고나다가 &amp;lt;애프터양&amp;gt;에서도 보여준 것과 비슷하게 등장인물이 다 함께 모여 춤을 춘다.&amp;ldquo;그렇게 그곳은 서로 다른 시간대와 공간이 서로 뒤섞이고 응집되는 장소가 된다. 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신명 나게 몸을 흔든다. 적대와 증오, 울분과 원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amp;hellip;) 우리가 목격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는 것만 같은 느낌, 힘겨운 삶을 헤쳐가는 &amp;lsquo;이방인&amp;rsquo;들의 춤과 노래로 가득한 세계가 있는 듯한 느낌, &amp;lsquo;풀뿌리&amp;rsquo;들의 &amp;lsquo;오늘을 사는 삶&amp;rsquo;이 한데 뭉친 시공간이 가상적으로 어디엔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 &amp;lt;파친코&amp;gt;는 바로 그 기운을 선사하며 과거를 이야기한다.&amp;rdquo;&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OTT SF 장르 시리즈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3/ott/</link>
      <pubDate>Fri, 21 Mar 2025 12:3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3/ott/</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ott-1.jpg&#34; alt=&#34;Over-the-top media service&#34;&gt;&lt;/p&gt;&#xA;&lt;p&gt;2020년부터 2년간 춘천SF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xA;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영화제에서 일한 경험도 소중했지만, 한국 최초의 SF 장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전 세계의 동시대 SF 장단편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경험 또한 소중했다.&#xA;팬데믹 상황이 영화제의 미래를 고민하도록 만들었다면, 동시대 SF 장르 영화들 속에 담긴 앞날에 대한 위기의식은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도록 만들었다.&#xA;어찌되었든 &amp;lsquo;미래&amp;rsquo;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lt;/p&gt;&#xA;&lt;p&gt;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고민을 더욱 가중시킨 매체는 바로 OTT 플랫폼이었다.&#xA;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빠르게 보급된 OTT는 영화 산업, 관람 환경, 문화 콘텐츠의 소비에 대한 모든 패러다임을 뒤바꿔버렸다.&#xA;특히 현장성이 중요한 영화제 입장에서 OTT는 가장 큰 변수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다.&#xA;관객이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개최해야 했던 영화제들은 온라인 상영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xA;OTT 플랫폼과 손을 잡았지만, 막상 이런 방식으로 치르고 나니 영화제의 본질은 바로 극장에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모호함, 하지만 흥미로움</title>
      <link>https://beott.kr/posts/3/westworld/</link>
      <pubDate>Thu, 13 Mar 2025 00:05: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3/westworld/</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westworld-1.jpg&#34; alt=&#34;Westworld&#34;&gt;&lt;/p&gt;&#xA;&lt;blockquote&gt;&#xA;&lt;p&gt;우리의 허가 없이 노래하는 사람들 모두&lt;br&gt;&#xA;우리의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lt;sup id=&#34;fnref:1&#34;&gt;&lt;a href=&#34;#fn:1&#34; class=&#34;footnote-ref&#34; role=&#34;doc-noteref&#34;&gt;1&lt;/a&gt;&lt;/sup&gt;&lt;br&gt;&#xA;-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lt;/p&gt;&lt;/blockquote&gt;&#xA;&lt;p&gt;폴 스트랜드(Paul Strand)의 사진 &amp;lt;하얀 울타리&lt;sub&gt;White Fence&lt;/sub&gt;&amp;gt;는 1917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잡지 『카메라 워크&lt;sub&gt;Camera Work&lt;/sub&gt;』에 실렸다. 당시에는 별주목을 받지 못한 이 건조하고 무심한 사진은 이후 &amp;ldquo;미국 사진의 사진 전통이 발전하는데 표준&amp;rdquo;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는다. 스트랜드는 왜 특별한 요소가 없는 평범한 뉴욕 교외 주택가의 풍경을 찍었을까. 그는 &amp;ldquo;울타리 자체에 매료되었기 때문&amp;quot;이라고 설명한다.&amp;ldquo;그 울타리는 굉장히 생생하고 미국적이었으며 이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amp;rdquo;&lt;sup id=&#34;fnref:2&#34;&gt;&lt;a href=&#34;#fn:2&#34; class=&#34;footnote-ref&#34; role=&#34;doc-noteref&#34;&gt;2&lt;/a&gt;&lt;/sup&gt;&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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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title>
      <link>https://beott.kr/posts/3/unbelievable/</link>
      <pubDate>Sun, 02 Mar 2025 2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3/unbelievable/</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unbelievable-1.jpg&#34; alt=&#34;Unbelievable&#34;&gt;&lt;/p&gt;&#xA;&lt;p&gt;&amp;lt;믿을 수 없는 이야기&amp;gt;의 가장 큰 장점은 피해 현장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이다. 이 시리즈는 성폭행 사건과 경찰 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그런만큼 피해자들의 진술이 포함된다. 그 진술을 음성으로만 들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더불어, 당시 현장에 대해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시청각적 기억들을 말하기 힘들게 한다. 어떤 재난이든, 사건 이후에 남은 트라우마와 기억의 파편이 재난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에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amp;lt;믿을 수 없는 이야기&amp;gt;와 같은 작품들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재현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라는 무척 까다로운 문제와 부닥칠 수밖에 없는데, 이 시리즈는 그 어려움을 (대단치 않더라도) 꽤 현명하게 해결한다. 자극적인 폭력과 여성의 나체 재현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폭력과 피해가 발생했고 그 기억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일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가 윤리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방식으로 피해 당시 현장을 재현한 범형을 만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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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지도라와 장만옥. 그리고 알리시아 비칸데르</title>
      <link>https://beott.kr/posts/3/irma-vep/</link>
      <pubDate>Thu, 27 Feb 2025 18:4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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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irma-vep-1.jpg&#34; alt=&#34;Irma Vep&#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지겨운 이야기 하나. 이런저런 플랫폼과 TV시리즈, 그리고 극장과 모니터 사이로 관객이 흩어졌다.  그리고 코로나는 그렇잖아도 흩어지게될 사람들을 정말 확실하게 만나지 못하도록 격리시켰다. 이제 다들 혼자, 혹은 두 세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영화를 본다.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 사이를 떠도는 게 관객 뿐일까? 우리는 작품들도 그 틈을 유령처럼 배회한다는 걸 종종 잊는다. 단지 각각의 오리지널 영화/시리즈와 극장 개봉 후 시즌오프 세일처럼 OTT에 얼굴을 드러낸 영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뜬금없이 넷플릭스로 완성된 오손 웰스의 &amp;lt;바람의 저편&amp;gt;(2018)이나 노아 바움백의 신작 아래 &amp;lsquo;함께 볼만한 작품&amp;rsquo;으로 추천된 홍상수의 2000년대 초반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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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명하는 세계</title>
      <link>https://beott.kr/posts/3/the-oa/</link>
      <pubDate>Mon, 24 Feb 2025 12:2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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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the-oa-1.jpg&#34; alt=&#34;The OA&#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7년간 실종되었던 딸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겪었던 버스 사고의 여파로 눈이 먼 딸은 실종 이후 놀랍게도 &amp;lsquo;볼 수 있는&amp;rsquo;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딸이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속 시원히 묻지도 못한 어머니는, 식사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가버린 무례한 불청객 때문에 꾹 눌러온 울분을 토한다. &amp;ldquo;저 사람들은 멋대로 상상하면서 널 다 안다고 생각할 거야.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amp;rdquo; 어머니의 절규는 그가 입양 딸 프레이리(브릿 말링)에게 닥친 7년의 일을 어떤 마음으로 다독이고 염려해왔는지를 보게 한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고자 프레이리는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지만, 어딘가 달라져 돌아온 딸이 &amp;ldquo;저는 오리지널 엔젤(OA)이에요&amp;quot;라고 하는 말을 덥석 받아들일 리는 없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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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조작된) 추억을 사랑하겠어!</title>
      <link>https://beott.kr/posts/3/apollo/</link>
      <pubDate>Fri, 21 Feb 2025 23:18: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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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apollo-1.jpg&#34; alt=&#34;WandaVision&#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리처드 링클레이터를 두고 영화가 지닌 시간성을 언급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시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루는 감독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amp;lsquo;비포 시리즈&amp;rsquo;, &amp;lt;보이후드&amp;gt;(2014)는 일정하게 압축된 시간 동안 변해있는 인물들을 통해 시간 그 자체를 감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축에서는 자신의 실제 추억과 뒤섞인 게 분명한 영화들, 그러니까 &amp;lt;멍하고 혼돈스러운&lt;sub&gt;Dazed and Confused&lt;/sub&gt;&amp;gt;(1993), &amp;lt;스쿨 오브 락&lt;sub&gt;The School of Rock&lt;/sub&gt;&amp;gt;(2003), &amp;lt;에브리바디 원츠 썸!!&lt;sub&gt;Everybody Wants Some!!&lt;/sub&gt;&amp;gt;(2016) 등으로 과거에 대한 낙천적 향수가 가득한 영화를 만든다. 이때의 시간성은 이제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 그리고 우리가 이른바 &amp;lsquo;추억&amp;rsquo;이라고 부르는 시점을 재현한다. 이렇듯 그가 구현해내는 시간성은 전혀 다른 성질을 띠는 듯하지만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amp;lsquo;윤색&amp;rsquo;이다. 물론 영화의 재현에 있어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억이나 존재에 대한 윤색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시간을 영화로 포획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 윤색이라는 행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각하게 만든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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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완다(tele)비전</title>
      <link>https://beott.kr/posts/3/wanda-vision/</link>
      <pubDate>Thu, 20 Feb 2025 23:18: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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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wanda-vision-1.jpg&#34; alt=&#34;WandaVision&#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이상한 일이다. 한국에서 죽쓰고 있는 디즈니 플러스를 굳이 가입한 뒤(아니면 통신사 프로모션으로 들어왔거나) 수많은 콘텐츠 중에 굳이 &amp;lt;완다비전&amp;gt;에 들어왔다는 것은 당신이 분명 마블 시리즈(이하 MCU)의 팬이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보는 별다른 이유도 없다. &amp;lt;닥터 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유니버스&amp;gt;(2022)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따름이니 당연히 보러 올 수밖에 없었겠다. 그런데 &amp;lt;완다비전&amp;gt;은 마블 팬인 당신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당혹감을 주게 된다. 죽을 줄만 알았던 비전(폴 베타니)이 버젓이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시트콤을 하고 있다니? 그것도 흑백 화면으로! &amp;lt;완다비전&amp;gt;은 시리즈 밖 사정 혹은 MCU의 스토리라인은 전혀 모른다는 듯 군다. 마치 별개의 이야기처럼 능청스럽게 콩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1화가 다 끝나가서야 &amp;lt;환상특급&amp;gt;을 연상하게 하는 마무리로 떡밥을 짐작하게 되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궁에 있다.&#xA;이 당혹감은 이상하게도 당연하다. 우리가 으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MCU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니까. 심지어 그동안의 이어져 온 마블의 내러티브와 전혀 연관도 없어 보인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amp;lt;완다비전&amp;gt;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고백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수십 시간의 영화를 먼저 보고 와야 하는, 거대한 울타리가 생겨버린 마블 시리즈는 그것을 향유하는 팬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연속의 과정에 있는 사람만이 &amp;lt;완다비전&amp;gt;을 보며,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MCU의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amp;lt;완다비전&amp;gt; 2화를 이어서 봐야하는가? &amp;lt;완다비전&amp;gt;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팬들의 당혹감을 원동력 삼아 극을 이어나간다. 시리즈는 &amp;lt;완다비전&amp;gt;을 둘러싼 경계 그 자체를 드러내어 OTT가 가미된 MCU의 지속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말대로 과연 &amp;lt;완다비전&amp;gt;은 모니터 안팎에서 반복적으로 경계 혹은 구획의 행위를 지시한다. MCU라는 구획에서의 팬과 비(非)팬의 온도차, 완다가 만들어낸 시트콤 세계의 영역, 모니터 안을 보고 있던 관객이 갑자기 모니터 밖 또 다른 재현의 세계로 내던져(4화 참조)지기도 하면서 각자의 층위에서 구획을 감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amp;lt;완다비전&amp;gt;이 드러내는 구획의 감각은 무엇이란 말인가.&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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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에게, 아니 당신에게, 그러니까… 나 이면서 당신인 그대에게</title>
      <link>https://beott.kr/posts/3/severance/</link>
      <pubDate>Sun, 16 Feb 2025 23:16: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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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severance-1.jpg&#34; alt=&#34;Severance&#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만약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시에 성소수자인 사람이 있다면 우린 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amp;ldquo;살고 싶다&amp;quot;고 말하며 그 욕망을 증명하기 위해 자해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렴풋이 가늠은 해보더라도 그 괴리를 쉽게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의 이분법은 너무 극단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정만으로 흥미로운 상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전과 모던을 막론하고, 매력적인 &amp;lsquo;이야기&amp;rsquo;는 대개 이런 식의 모순에서 촉발된 딜레마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붙잡으려 노력해왔다.&lt;/p&gt;&#xA;&lt;p&gt;그런데 이런 모순들이 여러 사람에게서, 각양각색의 모양새로 뒤엉켜있는 이야기를 접한다면? 그쯤되면 모종의 결론이나 이해보다 그 난장을 관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amp;lt;세브란스: 단절&amp;gt;은 우리에게 이런 난장을 들이밀면서, 관망과 이해의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이 시리즈엔 상술한 종류의 모순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하나의 이야기 속에 정돈과 흩뜨러지기가 반복되며, 변태적이고 기괴한 세계가 안온함 속에 섞여드는 모순이 가득하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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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검은 거울 앞의 신체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3/black-mirror/</link>
      <pubDate>Sun, 16 Feb 2025 23:05: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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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black-mirror-1.jpg&#34; alt=&#34;black-mirror&#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사방이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한 인간이 눈을 뜬다(S12E: &amp;lsquo;핫샷&amp;rsquo; &lt;sub&gt;15 Million Merits&lt;/sub&gt;). 자연의 빛이 전혀 새어들지 않는 갇힌 공간. 하지만 갇힌 감각은 곧 화려한 자연의 아침을 닮은 디스플레이의 환한 빛 속에서 해갈된다. 여기서라면 원하는 풍경 속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고, 완벽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눈앞의 화면을 리모컨으로 조종하기만 하면 웬만한 욕구는 편리하게 해결된다. 디스플레이의 작동이 멈추지 않는 한, 미래 사회의 일상은 그렇게 시각의 해방을 이뤄내는 듯했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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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용돌이 어둠의 빛을 찾아서</title>
      <link>https://beott.kr/posts/3/dark/</link>
      <pubDate>Tue, 11 Feb 2025 00:05: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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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3/dark-1.jpg&#34; alt=&#34;dark&#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당신은 빅뱅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나는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아무리 해도 그 &amp;lsquo;상&lt;sub&gt;像&lt;/sub&gt;&amp;lsquo;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가 없다. 폭발의 상은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폭발 이전에대한 상상은 어떻게 해도 불가능하다. 빅뱅 이론을 부정하는 거냐고? 천만에, 어찌 그럴 수 있겠나. 적색 편이, 수소와 헬륨 핵융합, 우주 배경 복사와 같은 과학적 증거를 부정할 재량은 나에게 없다. 빅뱅 이론은, 적어도 현재까지, 거부하기 힘든 정설이자 합리적 지식이다. 하지만 그 이론을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의 우주 혹은 지금 우리가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은 빅뱅에 의해 만들어졌다. 즉, 빅뱅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아예 없는, 그야말로 무&lt;sub&gt;無&lt;/sub&gt;의 상태였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태다. 머릿속에서 제아무리 빅뱅을상상하려 애써봐도 빅뱅 이전을 시간과 공간으로 상상해버리게 되는 탓이다. 시공간 없는 어떤 상태가 과연 인간의 머릿속에서 상상 가능할 법한가? 당신은 그럴 수있는가? 빅뱅을 상상할 때면 내 머릿속에는 우주 다큐멘터리 영상 한 편이 상영된다. 그 스크린 혹은 디스플레이 위에는 폭발 직전의 한 점이 있고, 그 점 바깥에 검은 화면이있다. 그리고 그 검은 화면을 둘러싼 스크린 및 디스플레이의 프레임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폭발하는 점 바깥을 특정한 시간과 공간으로 떠올리면서 빅뱅을 상상하게 된다. 빅뱅 이론과 모순되는 이러한 상상은 나의 인지적 한계다. 자꾸만 내가 지각적으로 경험한 것을 불러와 상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을 상상할 때 인간과 비슷하거나 지구의 어떤 생명체와 닮은 무언가로 떠올리는 일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즉, 나에게는 상상 가능한 영역으로서의 틀이 있어 그 바깥으로나가기가 힘들다. 그러니 어쩌면 빅뱅 이전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틀을 탈출하는 것은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어떤 조건이 그 탈출을 성립시킬까?&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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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넷플릭스에서 마약을 파는 법</title>
      <link>https://beott.kr/posts/2/how-to-sell-drugs-online-fast/</link>
      <pubDate>Tue, 21 Jan 2025 2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how-to-sell-drugs-online-fast/</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How-to-Sell-Drugs-Online-Fast-1.jpg&#34; alt=&#34;How to Sell Drugs Online (Fast)&#34;&gt;&lt;/p&gt;&#xA;&lt;h1 id=&#34;lesson-1-맞춤법&#34;&gt;Lesson 1. 맞춤법&lt;/h1&gt;&#xA;&lt;p&gt;&amp;lt;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amp;gt;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넷플릭스의 독일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다. 장르는 코믹 범죄. 10대가 주인공인 성장물의 성격도 있는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xA;흥미로운 건 지난 해 가장 즐겁게 봤던 이 드라마의 제목을 번번히 &amp;lt;인터넷&amp;rsquo;에서&amp;rsquo; 마약을 파는 법&amp;gt;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이다.&#xA;영어 제목은 &amp;lt;How to sell drugs online (fast)&amp;gt;다. 그러니까 &amp;lsquo;으로&amp;rsquo;와 &amp;lsquo;에서&amp;rsquo; 어느 쪽이든 큰 문제 없는 번역일 텐데(&amp;lsquo;으로&amp;rsquo;가 조금 더 적절한 조사지만) 나는 왜 자꾸 &amp;lsquo;에서&amp;rsquo;로 착각하는 것일까.&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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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켜진 현실의 문제</title>
      <link>https://beott.kr/posts/2/evil-genius/</link>
      <pubDate>Tue, 14 Jan 2025 2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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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Evil-Genius-1.jpg&#34; alt=&#34;Evil Genius&#34;&gt;&lt;/p&gt;&#xA;&lt;p&gt;결국, 영화는 현실을 초과하지 못한다. 아무리 빼어난 통찰을 품은 영화가 있다고 해도 영화가 현실의 레이어보다 다채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영화의 한계도 아니다. 영화는 늘 어떤 식으로든 현실을 반영해 왔고, 현실에 관한 지각 없이 영화는 생성되지 않는다. 간혹 스크린 밖의 현실을 다시 주시하게 만드는 영화들을 만난다. 아마 다큐멘터리는 가장 그에 직접적으로 부합하는 장르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큐멘터리를 자주 따라다니는 &amp;lsquo;영화 같은 실화&amp;rsquo;라는 꼬리표는 매번 의문스럽다(&amp;lsquo;현실적인 영화&amp;rsquo;라는 픽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관습적 수사 속에서, 우리는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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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록과 상상</title>
      <link>https://beott.kr/posts/2/atlantas-missing-and-murdered-the-lost-children/</link>
      <pubDate>Fri, 10 Jan 2025 19: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atlantas-missing-and-murdered-the-lost-children/</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Atlantas-Missing-and-Murdered-The-Lost-Children-1.jpg&#34; alt=&#34;Atlanta&amp;rsquo;s Missing and Murdered: The Lost Children&#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비로소 여기에 도달한 당신은 아마도 비옽2호의 중심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amp;lt;마인드헌터&amp;gt;를 (일부라도)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의 대상을 &amp;lt;마인드헌터&amp;gt;를 거쳐온 독자로 상정하고 쓴다. 혹시라도 오직 &amp;lt;애틀랜타의 실종과 살인&amp;gt;만을 다루는 글을 찾아오셨다면, 죄송한 말이지만 뒤로가기를 누르거나 &amp;lt;마인드헌터&amp;gt;와 비옽2호의 1부를 먼저 보시길 권한다. 그렇다고 내가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유달리 새로운 매체적 논의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글은 실화와 기록에 대한 역사적 고찰도, 그렇다고 오롯이 픽션에만 눈을 고정한 영화비평도 아니다. 다만 그 틈새와 간격을 오가며, 얼마간 사족처럼, 역사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묘한 삼각관계가 안겨주는 감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관심과 관음, 그 사이의 사람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2/dont-fxxk-with-cats-hunting-an-internet-killer/</link>
      <pubDate>Sat, 04 Jan 2025 2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dont-fxxk-with-cats-hunting-an-internet-killer/</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Dont-FxxK-with-Cats-Hunting-An-Internet-Killer-1.jpg&#34; alt=&#34;landscapers&#34;&gt;&lt;/p&gt;&#xA;&lt;p&gt;프로파일러 권일용은 다수의 매체에서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이 연쇄살인범의 진화형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어떤 범죄들은 그 시대 사회의 음습한 틈새를 자양분 삼는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2000년대 이래 우리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이미지 기반의 범죄가 사회 전반에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 기반의 범죄는 ‘본다’라는 행위와 필연적으로 연관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이 ‘보는 행위’가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걸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과연 그 말대로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에 살고 있다. 발달된 기계를 통해 어디서나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만 재현되는 줄 알았던 살해의 현장마저도.&lt;/p&gt;</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이즈라 하더라도</title>
      <link>https://beott.kr/posts/2/russian-doll/</link>
      <pubDate>Thu, 02 Jan 2025 18: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russian-doll/</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russian-doll-1.jpg&#34; alt=&#34;landscapers&#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amp;lt;마인드헌터&amp;gt;는 패턴을 찾는 게임이다. 연쇄살인자들의 행동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그곳에서 패턴을 찾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해결 살인사건의 단서를 추적한다. 패턴을 발견하고 의미화하는 것은 패턴 간의 상호 관련성을 찾는 일이자, 우발적으로 보였던 패턴을 필연적인 것으로 위치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필연은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면 반드시 일어나는, 대안적 가능성이 없는 사물 현상을 가리킨다. 사람의 죽음처럼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현상인 것이다. 이처럼 &amp;lt;마인드헌터&amp;gt;의 게임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만 같은 일’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에서 패턴의 오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패턴에는 간섭, 장애, 버그와 같은 오류가 섞인다. 노이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의 핵심은 노이즈를 걸러내고 유의미한 정보들을 캐내어 패턴으로부터 필연을 추출하는 것이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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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량하고 가슴 아픈 방식으로</title>
      <link>https://beott.kr/posts/2/im-thinking-of-ending-things/</link>
      <pubDate>Mon, 23 Dec 2024 1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im-thinking-of-ending-things/</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im-thinking-of-ending-things-1.jpg&#34; alt=&#34;i&amp;rsquo;m Thinking of Ending Things&#34;&gt;&lt;/p&gt;&#xA;&lt;p&gt;무엇 때문에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인 대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가? 가상성의 단계를 가정하는 것으로, 가상의 좀 더 밝고 어두운 음영과 전체적인 색조—화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색가(valeur)’의 차이를 가정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째서 우리가 관계하는 세계가 허구여서는 안 되는가?&#xA;(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lt;/p&gt;&#xA;&lt;p&gt;단어들, 내가 그 모든 단어들이야, 그 모든 낯선 단어들, 먼지 같은 그 말들이 다 나야.&#xA;(사무엘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lt;/p&gt;&#xA;&lt;p&gt;&amp;lt;마인드헌터&amp;gt;의 라디오는 늘 정확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해당 에피소드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에서 가장 ‘전파를 많이 탔던’ 노래들이다. 시즌2, 여덟 번째 에피소드에는 &amp;lt;마인드헌터&amp;gt;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빌 텐치 요원이 그의 어린 아들 브라이언과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곳에서는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가 부르는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가 흘러나온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 ‘팝송’ 1981년에 발표되어 3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었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 상’까지 수상했던(영화 &amp;lt;아서(Arthur)&amp;gt;의 사운드트랙에 수록) 곡이다. 빌 텐치가 아들과 함께하고 있는 그 시각은 드라마의 타임라인 상 1981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역시 &amp;lt;마인드헌터&amp;gt;의 라디오—시계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이렇게 ‘고증’에 공을 들여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그럼으로써 극을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제작진이 ‘실제로 있었음직함’이라는 느낌을 고양하기 위해 선택한 요소들이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때, 드라마에 추가된 다른 허구적 설정들이 현실감을 획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허구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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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부는 어디에 있는가</title>
      <link>https://beott.kr/posts/2/landscapers/</link>
      <pubDate>Fri, 20 Dec 2024 11: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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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landscapers-1.jpg&#34; alt=&#34;landscapers&#34;&gt;&lt;/p&gt;&#xA;&lt;p&gt;당연한 이야기 하나. ‘정원사들’로 부를 수 있는 &amp;lt;랜드스케이퍼스&lt;sub&gt;Landscapers&lt;/sub&gt;&amp;gt;의 제목은 주인공인 수전(올리비아 콜맨)과 크리스토퍼 에드워즈(데이비드 슐츠) 부부를 가리킨다.&#xA;영어에서 2인 관계의 역할을 설명할 때 종종 쓰이는 비유이자 1화에서 두 경찰이 주고받는 대화에 등장하는 “부부 중 한 명은 정원사고 다른 한 명은 정원이다”라는 문장을 비틀어 에드워즈 부부를 하나의 복수형으로 지시하는 것이다.&#xA;게다가 이들이 수전의 부모를 살해한 뒤 다른 곳도 아닌 부모가 살던 집 뒷마당에 묻었다는 점에서 에드워즈 부부가 정원을 조경하는(?) 일에 함께 가담한 동업자들이라는 의미도 자연스럽게 내비친다.&#xA;‘정원사들’이라는 제목은 끔찍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범죄물이자 절절한 멜로까지 담고 있는 &amp;lt;랜드스케이퍼스&amp;gt;의 에드워즈 부부를 설명하기에 퍽 적절한 단어다.&#xA;그런데 이 시리즈가 살인 사건의 경위와 수사 과정을 전개하며 동원하는 시각적 형식을 따라가다 보면 ‘랜드스케이퍼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또 다른 존재를 상기하게 만드는데, 이는 단연 서부극의 환경이자 심상인 ‘랜드스케이프’다.&#xA;&amp;lt;랜드스케이퍼스&amp;gt;가 내내 반복적으로 &amp;lt;하이 눈High Noon&amp;gt;을 비롯한 고전영화들의 목록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4화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라마/시리즈 내에 장대한 웨스턴의 이미지를 기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는 사뭇 인상적인 지점이다.&#xA;&amp;lt;랜드스케이퍼스&amp;gt;는 웨스턴을 모방/재현하기 위해 화면비까지 들쑥날쑥 바꿔가며 자기 내부에 영화의 모양을 가져오길 시도한다.&#xA;여기서 주목할 점은 말장난처럼 제목을 토대로 이 미니시리즈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를 파악하기보다는, 이 작품이 안팎으로 지닌 이중적이고 중의적인 함의를 골몰해보는 것이다.&#xA;달리 말해 전체적인 모양새로는 드라마/시리즈의 품을 갖춘 이 작품이 내내 영화의 존재를 의식하며 자신의 ‘신분’을 이상한 방식으로 노출시키는 동시에 이탈하려 한다는 (무모한) 시도 말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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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차원의 입구를 열어: 대화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2/mindhunter-4/</link>
      <pubDate>Thu, 12 Dec 2024 21: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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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mindhunter-4-1.webp&#34; alt=&#34;Mindhunter&#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amp;lt;마인드헌터&amp;gt;에는 악명높은 살인자들과 사건 사이의 인과를 규명하려는 자가 등장하지만, 정작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은 없다. 오직 사후의 ‘진술’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윤리적 측면에서 살인의 현장을 묘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대신 이 텅 빈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화다. 살인마의 입을 통해 묘사된 사건의 현장은 어쩌면 직접적인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은밀하고 충격적이다. 적나라한 신체 훼손과 폭력, 강간, 급기야 살인과 사체 처리의 과정까지. 그간 살인 사건을 압축적인 이미지로 접해왔던 관람자에게 살인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넘치는 정보일 수 있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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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약한 남자의 하드보일드한 눈빛</title>
      <link>https://beott.kr/posts/2/mindhunter-3/</link>
      <pubDate>Wed, 04 Dec 2024 21: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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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mindhunter-3-1.webp&#34; alt=&#34;Mindhunter&#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스쳐지나가는 눈빛과 사소한 제스처, 순간적이고 미세한 표정과 목소리의 떨림, 그리고 그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부정확한 진술과 기억들. 거기에 개개인이 다르게 선택하는 단어들, 각자의 사투리와 각자의 말투, 각자의 문법들. FBI 행동과학부 요원 홀든에게 이 같은 대화 속 미세한 흔적들은 모두 상대를 내면을 간파하는 주요한 힌트들이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곤 이 추상적인 징후들만으로 상대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트라우마와 욕망을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 무심한 관찰 위에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살인범을 가려내고, 누구보다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한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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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는 미친 사람을 좋아한다.</title>
      <link>https://beott.kr/posts/2/mindhunter-2/</link>
      <pubDate>Wed, 27 Nov 2024 12: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2/mindhunter-2/</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mindhunter-2-1.webp&#34; alt=&#34;Mindhunter&#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전반적으로 행복하고 안락한 소년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은 살인으로부터 공포뿐 아니라 쾌락을, 아니면 그가 살인의 공포와 쾌감을 연결지어서 즐겨 표현했던 ’공포의 기쁨‘을 느끼면서, 살인에 매료되는 문화를 경험한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었다. 여생 동안 히치콕은 실제 살인자에게 매혹됐고, 영화로 그들을 재현해내려고 노력했다.’&lt;sup id=&#34;fnref:1&#34;&gt;&lt;a href=&#34;#fn:1&#34; class=&#34;footnote-ref&#34; role=&#34;doc-noteref&#34;&gt;1&lt;/a&gt;&lt;/sup&gt;&lt;/p&gt;&#xA;&lt;p&gt;뜬금없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 위의 인용문은 우리가 &amp;lt;마인드헌터&amp;gt;를 비롯해서 끔찍한 살인이 나오는 매체를 왜 만들고 즐겨보는지 정확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라는 환영 뒤에 숨어 은밀한 쾌락을 추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게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말초적 쾌락이든(이 경우는 공포도 포함한다), 논리적인 추리로 살인마를 잡는 정신적 쾌락이든, 현실에선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둘러싸고 각기의 쾌락을 추구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가 추구하는 쾌락의 본질은 그 방향이 어디든 희생자를 죽이려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알 수 없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매혹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정말로 살인자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드러난 범인은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정말로 미지의 세계 그 자체이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저 ‘변태’나 ‘사이코’로 치부하고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험하고 음습한 것에 더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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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전히 어두운 그곳</title>
      <link>https://beott.kr/posts/2/mindhunter/</link>
      <pubDate>Tue, 26 Nov 2024 12: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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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2/mindhunter-1-1.webp&#34; alt=&#34;Mindhunter&#34;&gt;&lt;/p&gt;&#xA;&lt;p&gt;어둡다. 〈마인드헌터〉는 이상할 정도로 어둡다.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는 않다. 사물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뚜렷이 보일 정도도 아니다. 이 시리즈가 누아르 장르에 가깝다고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어둡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다. ‘검은 영화’란 뜻의 필름 누아르는 그 시작부터 어두웠지 않은가. 하지만 필름 누아르는 단지 어두운 영화가 아니었다. 그 어둠은 밝음과 대비되는 어둠이었다. 흔히 ‘키아로스쿠로&lt;sub&gt;chiaroscuro&lt;/sub&gt;라고 말해지는 강렬한 명암 대비가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스타일로 대변되었다. 이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밝음의 반대편으로 강조되던 어둠이었다. 그런데 〈마인드헌터〉는 그러한 시각적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차라리 이 작품은 그저 어둡다. 그것도 누아르같이 명암 대비가 강한 어둠이 아니라 명암 대비가 약한 어둠이다. 사진 촬영 용어로 말한다면 ‘적어도 한 스톱(stop) 정도는 어둡다’고 해야 할까(한 스톱 차이가 날수록 화면은 2배로 밝아지거나 1/2 정도로 어두워진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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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해와 오판, 오작동의 오락</title>
      <link>https://beott.kr/posts/1/squid-game/</link>
      <pubDate>Wed, 06 Nov 2024 00:04: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1/squid-game/</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squid-game-1.webp&#34; alt=&#34;Squid Game&#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아직도 그 그로테스크한 가스펠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지겨울만도 하건만 여전히 TV와 유튜브에선 “이러다 다 죽어”와 “깐부잖아”를 패러디하고, 그것도 모자라 몇몇 대형 유튜버들은 게임 자체를 재현하기도 한다. 사소한 사례들을 나열했지만 &amp;lt;오징어 게임&amp;gt;(2021)에 쏟아진 이런 압도적인 관심과 거기서 파생된 코스튬, 놀이문화, 관광 등 2차 창작의 연쇄는 다소 유행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라이트 노벨의 세계를 파헤치며 소비자와 창작자의 영토가 무한히 뒤엉키는 문화적 양상을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이라고 이름 붙인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대자본이 순환하는 넷플릭스 시장에서, 그것도 B급 장르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작품이 이 같은 현상을 일으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xA;물론 뒤늦게 &amp;lt;오징어 게임&amp;gt;의 화제성을 열거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amp;lt;오징어 게임&amp;gt;이 공개됐을 당시에도, 이후 열풍을 일으켰던 태풍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리고 변화무쌍한 트렌드의 바람에 금세 생명이 꺼져가는 듯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구심이 남아있다. 작품의 안과 밖의 사이에서, 그에 대해 짧게 말해보려 한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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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손쉽게 자족하지 말 것</title>
      <link>https://beott.kr/posts/1/moxie/</link>
      <pubDate>Tue, 05 Nov 2024 00: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1/moxie/</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moxie-1.webp&#34; alt=&#34;Moxie&#34;&gt;&lt;/p&gt;&#xA;&lt;p&gt;여전히 페미니즘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메인 토픽이다.&#xA;이 물결에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몸을 맡기려 할 때면 예기치 못한 질문들이 너울처럼 급습해온다.&#xA;매일 꾸준한 업데이트가 요청되고, 그만큼 수시로 의심하고 확인해야 할 주장도 늘어난다.&#xA;이 문제&lt;sub&gt;question&lt;/sub&gt;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야 할 것이다.&lt;/p&gt;&#xA;&lt;p&gt;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기성 작가가 아닌 일반 개개인이 여성주의나 질병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발화하는 성장 서사가 범람하는 현재를 진단하며&#xA;이들이 ‘쉬운 책’으로 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힌다.&#xA;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타인과 고통을 경쟁하기 쉽고 자기도취의 유혹도 찾아온다”고 말한다.&#xA;여기에 그는 김현미의 통찰을 덧붙인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여성의 경험’만이 진실이고 독점적인 피해라고 기술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xA;피해 경험과 맥락도 해석, 비판, 개입이 필요한 영역이고, 해석, 비판, 개입의 과정에서 자신이 못 봤던 것, 용인했던 것, 남용했던 것을 알아가는 성찰적 과정이 필요하다.”&#xA;사실 이러한 통찰은 우리 삶의 지침으로서 더욱 폭넓게 요구되어야겠지만, 앞서 정희진이 자전적 에세이의 경향에 관해 말한 대로 영화의 영역에도 꽤 적용할 만하다.&#xA;이것은 내가 〈걸스 오브 막시&lt;sub&gt;Girls of Moxie&lt;/sub&gt;〉(2021)라는 다소 평이하고 몰개성적인 작품을 왜 선정했는지에 관한 변론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보수적인 장르로서) 하이틴이라는 외피를 지닌 채 작금의 가장 전복적인 의제인 페미니즘을 테마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연대 하나만을 달성하기 위해 목적론적인 전개를 펼쳐나가는 이 영화의 맹점을 최근의 고민과 함께 접합해볼 수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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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is is not a comedy</title>
      <link>https://beott.kr/posts/1/bo-burnham-inside/</link>
      <pubDate>Mon, 04 Nov 2024 00: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1/bo-burnham-inside/</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bo-burnham-inside-1.webp&#34; alt=&#34;Bo Burnham: Inside&#34;&gt;&lt;/p&gt;&#xA;&lt;p&gt;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언 보 번햄은 2020년 코로나 시대의 전례 없는 칩거 생활을 맞닥뜨리자 방 안에서 벌이는 1인극 콘텐츠를 기획한다. 〈보 번햄: 못 나가서 만든 쇼〉(Bo Burnham: Inside, 이하 〈인사이드〉)(2021)는 장장 1년을 훌쩍 넘긴 나날 동안 그가 쌓아 온 독백의 기록이다. 연출, 연기, 노래, 촬영, 편집 등 모든 역할을 홀로 도맡았고 비록 장소는 협소하지만 포크, 락, 힙합, 뮤지컬, 인형극 등의 형식을 빌려온 일종의 원맨쇼 콘서트를 다종다양한 구성으로 보여준다. 이때 〈인사이드〉라는 타이틀에는 ‘방의 내부’에서 벌이는 쇼를 가리키는 표면상의 의미가 읽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잠식해 가는 그의 ‘내면’에 관한 기록까지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lt;/p&gt;</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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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상된 역사, 덧씌워진 얼굴들</title>
      <link>https://beott.kr/posts/1/fear-street/</link>
      <pubDate>Sun, 03 Nov 2024 00:00:00 +0900</pubDate>
      <guid>https://beott.kr/posts/1/fear-street/</guid>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fear-street-1.webp&#34; alt=&#34;Fear Street&#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장난으로 시작해서 살인으로 끝난 이야기’&#xA;서점의 손님이 의붓딸에게 줄 ‘쓰레기 졸작’ 책의 제목으로 제시되는 이 문장은 〈피어 스트리트&lt;sub&gt;Fear Street&lt;/sub&gt;〉 시리즈(이하 〈피어 시리즈〉)(2021)의 세계를 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시리즈는 첫 오프닝 시퀀스부터 자신이 B급 영화임을 전혀 숨기지 않는데,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서점 직원 헤더(마야 호크)가 저주에 걸린 라이언(데이비드 톰슨)에게 곧바로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나 그 과정에서 라이언의 칼을 〈피어 시리즈〉의 원작 소설책으로 방어하는 등, 〈피어 시리즈〉는 농담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일까. 호러 영화의 외피를 두른 채 사실상 하이틴 영화 장르처럼 연출하고 있는 시리즈는 영락없는 B급 영화의 그것이다. 그러나 〈피어 시리즈〉를 단순히 B급 영화의 전형으로만 두기에는 어쩐지 찝찝하다. 이 장난 같은 상황에서도 미묘하게 제대로 기능하는 호러의 세계 때문이다. 시리즈는 호러를 외피 취급하면서도 호러의 기능을 아예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두 세계가 서로를 참조하고 보완하게 만든다. 다시 앞의 문장을 불러오도록 하자. 시리즈는 분명 장난으로 시작해서 살인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지금부터 나는 이 혼종성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xA;〈피어 시리즈〉는 그 공개 방식부터 혼종적이다. 〈피어 시리즈〉를 연작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의 차이를 두고 발표될 수밖에 없는(시리즈 간의 시간차가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이러니하다) 보통의 연작 영화와는 달리 〈피어 시리즈〉는 동시에 촬영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동시에 공개되었다. 이는 드라마의 발표 방식과 유사하며,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이하 〈피어 1〉)에서는 다음 영화의 예고편을,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이하 〈피어 2〉)에서는 앞 파트의 내용을 다시 넣어 설명한다는 점에서 분명 드라마의 순차적/병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피어 시리즈〉를 드라마로 보아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말하기에도 이상하다. 〈피어 시리즈〉는 에피소드마다 각자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으며, 주인공이 달라지는 드라마다. 물론 잘못된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피어 1〉부터 달려오는 인물들이 있지만 우리가 몰입하는 주인공들은 각 파트별로 과거의 시공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리고 결코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현대로부터 과거 순으로 배열된 설정 역시 드라마의 연결성과는 다른 지점이다. 마치 프리퀄이 계속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느슨하기 짝이 없는 고리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강도의 연결점. 〈피어 시리즈〉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드라마와 영화의 중간에 걸친 무한한 상태를 의도하고 있으며 영화 안팎으로 자신을 은유한다. 〈피어 시리즈〉는 대중에게 공개되는 방식부터 자신이 OTT 시대에서나 가능할 수 있음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드라마의 감각도, 영화의 감각도 아닌 혼종적 감각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원래 〈피어 시리즈〉는 20세기 스튜디오가 한 달의 간격을 두고 연속 개봉을 하는 연작 영화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개봉이 미뤄지다 결국 넷플릭스 독점작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던 것인데, 이렇듯 〈피어 시리즈〉가 자아내는 혼종성은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의도치 않게 경유한 OTT 플랫폼이야말로 ‘연결되어 있지만 어긋난 상태’, 즉 시리즈가 품은 혼종적 상태를 극대화하기 좋은 포맷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OTT의 감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직 섣부르다고 한다면, 〈피어 시리즈〉에서 이러한 감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시리즈의 중핵처럼 기능하고 있는 ‘상상된 역사와 덧씌워진 얼굴’들 말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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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노 히데아키는 에반게리온을 어떻게 끝내려하는가?</title>
      <link>https://beott.kr/posts/1/evangelion/</link>
      <pubDate>Sat, 02 Nov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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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evangelion-1.webp&#34; alt=&#34;Evangelion 2021&#34;&gt;&lt;/p&gt;&#xA;&lt;p&gt;&amp;lt;신 에반게리온 극장판&amp;gt;(2021)의 결말을 생각해보았다. 중학생 때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한 뒤 이 이야기의 결말을 계속 상상했고, 몇 개의 결말(TV판 결말, 1997년 &amp;lt;엔드 오브 에반게리온&amp;gt;의 결말, 만화책의 결말)을 실제로 보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야 말로 에반게리온은 정말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amp;lt;신 에반게리온 극장판&amp;gt;을 본 뒤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찾아왔고 이를 좀 더 고민해보고 싶어졌다.&lt;/p&gt;&#xA;&lt;p&gt;한 편의 픽션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떤 세계를 만든다는 전제에서 시작해보자. 이 세계는 물론 진짜가 아닌 가상의 허구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떻게 이런 허구를 보며 감동을 느끼는 걸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amp;lt;신 에반게리온 극장판&amp;gt;의 신지가 본인의 의지로 에바에 타겠다고 말할 때나, 미사토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나설 때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냉정하게 말하면 이들은 그저 픽션 속 가상의 인물이며, 심지어 실제 배우가 연기한 인물도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일 뿐인데 말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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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통제하려 했지만</title>
      <link>https://beott.kr/posts/1/tthe-queens-gambit/</link>
      <pubDate>Fri, 01 Nov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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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the-queens-gambit-1.webp&#34; alt=&#34;The Queen’s Gambit&#34;&gt;&lt;/p&gt;&#xA;&lt;p&gt;그들은 갱생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불안과 기대를 안고 〈퀸스 갬빗&lt;sub&gt;The Queen’s Gambit&lt;/sub&gt;〉(2020)을 지켜보았다. 내심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는 약물, 혹은 술에 의지한 삶을 권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 그것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상태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독은 술이나 약물 등 중독 대상에 의존하는 일이자 그것에 완전히 굴복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나 TV드라마 속 주인공이  중독에 빠져 있다면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어떻게든 극복하거나, 반대로 중독에 의해 완전히 망가진다. 이는 그저 장르적 관습에만 기반한 전개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우리가 기대하고 희망하거나, 우려하는 결말이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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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너무 접촉하거나 너무 떨어지거나, 혹은...</title>
      <link>https://beott.kr/posts/1/kingdom-5/</link>
      <pubDate>Sat, 05 Oct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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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kingdom-5-1.webp&#34; alt=&#34;kingdom&#34;&gt;&lt;/p&gt;&#xA;&lt;p&gt;약간 바보 같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다. &amp;lt;킹덤: 아신전&amp;gt;(2021, 이하 &amp;lt;아신전&amp;gt;)은 대체 뭘 위해 만들어진 작품일까? 90분을 조금 넘는 러닝타임 이후 가장 처음 든, 그리고 가장 굵직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오해를 피하고자 서둘러 부연하건대, 나는 지금 &amp;lt;아신전&amp;gt;의 만듦새나 제작 의도를 조롱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혀야 한다; 이런 경우가 지난 역사에 얼마나 있었던가? &amp;lt;킹덤&amp;gt; 시즌 2(2019) 마지막 시퀀스에 깜짝 등장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던 전지현-아신의 전사(前史)를 보여주는 이 &amp;lsquo;스페셜 에피소드&amp;rsquo;는, 자신이 속한 위치로 인해 유독 이질적으로 보인다. 물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amp;lt;킹덤&amp;gt;의 외전-프리퀄이라는 위치. 극영화나 드라마 같은 허구적 서사 영상 양식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통상적인 외전-프리퀄이란 독자적인 팬덤이 크게 생길 만큼 인기가 많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 것이다. (당연하지만 여기엔 부가 상품의 논리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한데 아신이 그런 정도의 캐릭터인가?&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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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체 이 세계는 왜 이렇게</title>
      <link>https://beott.kr/posts/1/kingdom-4/</link>
      <pubDate>Fri, 04 Oct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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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kingdom-4-1.webp&#34; alt=&#34;kingdom&#34;&gt;&lt;/p&gt;&#xA;&lt;p&gt;〈킹덤〉의 시즌1과 2는 한 몸인 듯 엮여 있다. 마블 히어로 영화를 말할 때 자주 들었던 ‘페이즈&lt;sub&gt;phase&lt;/sub&gt;(단계)’와 같다고 할까. 〈킹덤〉은 이제 페이즈1을 지나 페이즈2로 넘어간다.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은 둘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다. 〈아신전〉을 딛고 나타날 페이즈2는 배경과 인물 구도에서 현격한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양과 경상 땅을 오갔던 배경은 압록강 주변이 될 듯하고, 해원 조씨와 세자 이창의 2항적 대결 구도는 이창(조선)-아신-아이다간(여진족)이라는 3항 구도로 옮겨갈 듯하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모두 쫓아온 관객이라면 전지현이라는 지구 대스타의 시리즈 진입을 보며 이창과 아신의 갈등과 협력을 예상하게 될 것이다. 〈킹덤〉 제작진은 엄청난 구매력을 끌어내는 CF 스타이자 한류 스타인 전지현을 결코 악당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신전〉은 어떻게든 우리가 아신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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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 같지 않은 자들의 이상한 인간성에 대해</title>
      <link>https://beott.kr/posts/1/kingdom-3/</link>
      <pubDate>Thu, 03 Oct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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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kingdom-3-1.webp&#34; alt=&#34;poster&#34;&gt;&lt;/p&gt;&#xA;&lt;h1 id=&#34;1&#34;&gt;1.&lt;/h1&gt;&#xA;&lt;p&gt;화르륵, 타닥 타닥, 우지끈, 와르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촉 끝에 붙어있던 불씨가 나무기둥에 옮겨붙고 이내 활활 타오른다. 불길은 금세 건물 전체로 퍼져 서까래가 내려앉고 대들보가 무너진다. 혹은 바싹 메마른 갈대밭에 불을 질러 사방을 따가운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사람들의 옷에도 옮겨 붙는다. 한편 궁 내에 습격이 일어나 근정전 안까지 유혈이 낭자한 소란이 벌어지고, 서비(배두나)는 불타는 겉옷을 몸에 감싸 가까스로 탈출한다. 이 불(들)의 뜨거움과 밝음과 급박함, 그리고 피아를 가리지 않는 파괴성은 특유의 색감과 슬로모션 등으로 강조되어 모니터 너머까지 전해진다.&#xA;그런가하면 나무로 만든 투박한 마차는 아슬하고 긴박한 카체이싱(?)을 선보이며 마치 &amp;lt;벤허&amp;gt;(1959)의 조선 버전같은 장면을 만들어내고, 안현대감(허준호)과 그의 제자들은 상복차림으로 덤블링을 하거나  마샬아츠 같은 액션을 구사하며 흡사 닌자같은 무협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관청에 하옥된 채 목에 칼(枷)을 차고 있던 두 사내들 중 한 명이 역병에 전염되지만, 목에 찬 칼 탓에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잡히지도 못하고 빙글빙글 돌며 가련하고도 소름돋는 슬랩스틱을 보여준다.&#xA;별안간 웬 불과 나무, 마차와 칼 타령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amp;lt;킹덤&amp;gt;시즌1과 2(이하 &amp;lt;킹덤&amp;gt;) 그리고 &amp;lt;킹덤: 아신전&amp;gt;(이하 &amp;lt;아신전&amp;gt;)을 따라오며 다른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작품의 이야기와 그 속에 서려있는 다기한 쟁점들 보다, 이 좀비액션물이 조선이라는 봉건적 풍경과 결합하며 빚어낸 뜨겁거나 밝은, 투박하거나 화려한 시각적, 촉각적 심상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인상을 심어준 장면 중 몇 가지를 나열해 보았다. 이 속엔 사극 서사라는 배경과 조선이 가지는 풍경 이미지, 그리고 좀비와 액션드라마 장르의 관습체계가 뒤엉키며 만들어낸 복합적인 상관관계가 있고, 이 혼종성이 구현하는 어떤 효과가 &amp;lt;킹덤&amp;gt;시리즈의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그 인상적 면면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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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싹둑 싹둑</title>
      <link>https://beott.kr/posts/1/kingdom-2/</link>
      <pubDate>Wed, 02 Oct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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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kingdom-2-1.webp&#34; alt=&#34;poster&#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좀비&lt;sub&gt;zombie&lt;/sub&gt;. 오로지 식욕만 남은 시체들. 이들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은 오로지 인간들을 물었을 때다. 당연히 좀비 장르가 발생시키는 공포 역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감을 선사하며 인물에게 좀비들이 다가올 때, 혹은 다가오기 직전의 그 긴장감에서 나온다. 물론 〈월드워Z〉(2013)나 〈부산행〉(2016)처럼, 대규모의 좀비들이 군집을 이루며 다가오는(이는 앞으로 다룰 〈킹덤〉 시즌2 초반 상주에서도 실현된다) 경관 역시 등장하긴 하나, 공포가 실현될 때는 결국 좀비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다. 그리고 대체로 현대의 시공 안에서 벌어지는 좀비물의 특성상 이에 대항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총, 다시 말해 원거리 공격을 염두에 둔다. 그러니 좀비물은 인간과 좀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느냐 넓어지느냐로 긴장감이 형성되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킹덤〉은 칼을 쓰는 시대로 관객을 데리고 가면서 기존의 좀비물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나는 지금부터 이것을 ‘거리의 긴장감’이라고 부를 것이다. 거리의 긴장감은 또한 〈킹덤〉에서 ‘거리’라는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특유의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한 나름의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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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좀비의 속도감은 장르의 성공에 이르는 첩경인가</title>
      <link>https://beott.kr/posts/1/kingdom-1/</link>
      <pubDate>Tue, 01 Oct 2024 00:0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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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img src=&#34;https://beott.kr/images/1/kingdom-1-1.webp&#34; alt=&#34;kingdom&#34;&gt;&lt;/p&gt;&#xA;&lt;h1 id=&#34;0&#34;&gt;0.&lt;/h1&gt;&#xA;&lt;p&gt;그간 한국에서 좀비 서사의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amp;lt;부산행&amp;gt;(2016)에 이은 넷플릭스 드라마 &amp;lt;킹덤&amp;gt;(2019)의 등장은 세계 무대에 선 ‘K-좀비’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렸다. 동북아 3국 간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던 서구의 이목에 드디어 ‘조선’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좀비 영화의 정신적 시초로 알려진 조지 로메로의 &amp;lt;살아있는 시체들의 밤&amp;gt; 이후 5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첫 시즌(이하 &amp;lt;킹덤 1&amp;gt;) 공개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발표된 두 번째 시즌(이하 &amp;lt;킹덤 2&amp;gt;)을 관람한 관객들은 ‘전편보다 더 재미있는 시즌 2’의 등장을 반기는 모양이었다. 호평을 보낸 관객들의 인상을 들여다보자면 대체로 그 이유는 ‘훨씬 빠릿해진 좀비의 움직임’에 장르물로서의 만족도가 상승했다는 데 모였다. 흡사 전례 없는 코로나 19 대국민 백신 접종 현장이 막힘없이 현장이 일사천리라는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자찬하는 말들처럼, 한국형 좀비가 특히 한국 관객에게 환영받기 위해서는 도저히 굼뜬 움직임을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amp;lt;킹덤 1&amp;gt;에서 &amp;lsquo;느린 호흡&amp;rsquo;과 &amp;lsquo;지루한 전개&amp;rsquo;, ‘더딘 공포감’을 꼬집는 적지 않은 평을 의식한 듯한 &amp;lt;킹덤 2&amp;gt;의 좀비들은 신체적 능력이 대폭 향상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의 양 자체도 크게 늘어 촘촘한 진행을 따라가는 쾌감도 늘었다. 그러자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좀비의 속도는 좀비 장르의 성공과 결부되는가. 그들의 신체적 능력이 고양될수록 작품의 평가는 긍정적이기 쉬운가. 그렇다면 그 속도감이라는 것은 좀비 장르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고 있는가.&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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