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인 대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가? 가상성의 단계를 가정하는 것으로, 가상의 좀 더 밝고 어두운 음영과 전체적인 색조—화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색가(valeur)’의 차이를 가정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째서 우리가 관계하는 세계가 허구여서는 안 되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단어들, 내가 그 모든 단어들이야, 그 모든 낯선 단어들, 먼지 같은 그 말들이 다 나야. (사무엘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마인드헌터>의 라디오는 늘 정확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해당 에피소드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에서 가장 ‘전파를 많이 탔던’ 노래들이다. 시즌2, 여덟 번째 에피소드에는 <마인드헌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빌 텐치 요원이 그의 어린 아들 브라이언과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곳에서는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가 부르는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가 흘러나온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 ‘팝송’ 1981년에 발표되어 3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었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 상’까지 수상했던(영화 <아서(Arthur)>의 사운드트랙에 수록) 곡이다. 빌 텐치가 아들과 함께하고 있는 그 시각은 드라마의 타임라인 상 1981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역시 <마인드헌터>의 라디오—시계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이렇게 ‘고증’에 공을 들여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그럼으로써 극을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제작진이 ‘실제로 있었음직함’이라는 느낌을 고양하기 위해 선택한 요소들이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때, 드라마에 추가된 다른 허구적 설정들이 현실감을 획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허구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마인드헌터>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 주인공들이 FBI 요원으로서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와 그들 각자가 업무 시간 이외에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개인적으로 겪는 이야기들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실제 있었던 사건들, 범죄자들에 대한 기록(원작 소설의 내용)에 기대는 측면이 크지만,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들의 개인사를 다루는 후자의 경우는 그 인물들 자체가 가공의 인물이기 때문에(‘이름’이 다르기 때문에—비록 실존 인물들을 기초 모델로 삼고 있지만) 전자에 비해 허구의 농도가 훨씬 짙다. 후자에 속하는 가공된 설정 중에서도 그 가공의 정도가 특히 궁금했던 부분은 빌 텐치의 아들 브라이언이 어떤 잔혹한 사건에 연루된다는 설정이었다. 드라마 속 범죄자들의 말과 행동은 그 발화자를 이미 범죄자로 인식한 상태에서 듣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내용이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지만 브라이언이 연루된 사건의 내막이 드러날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사건에 대한 놀랍고 당혹스런 감정에 뒤이어 찾아온 것은 이 드라마가 캐릭터의 세계를 직조해 가는 방식에 대한 의심이었다. 일과 삶에 있어서 주인공이 놓이게 되는 상황이 복잡하고 입체적임을 전달하기 위해 주변 인물에게 의외의 사건을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이 너무 과도한 설정은 아니었을까. 브라이언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빌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아이스크림 가게 장면이다. 정확한 시간적 지표로서, 하나의 허구적 사건을 실제 사건들의 타임라인 위로 감아올리는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목소리는 너무나 감미로우면서도 그만큼 스산하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의 라디오 역시 정확하다. 제이크와 그의 여자친구 루시가 제이크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초반부에서, 운전 중이던 제이크는 음악을 듣기 위해 카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춘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사라지고 들려오는 곡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노래처럼 들린다. 이상하고 뜬금없는 노래라는 반응을 보이는 루시와 달리 제이크는 노래를 반기는 눈치다. 그는 루시에게 그 노래가 뮤지컬 <오클라호마! Oklahoma!>(1943년 초연)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마인드헌터>와 달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며,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기를 특정하지 않는다. 시작은 평범한 영화처럼 이야기가 선형적으로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디제시스에 균열을 내는 작은 순간들이 점점 그 덩치를 키워가면서 영화는 미궁 속에 빠진다. 루시의 이름은 루이사, 루치아, 에임스 등으로 바뀌고, 제이크의 부모는 대화의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연령대가 달라진다. 영화가 종반부에 이르렀을 때(더 높은 확률로, 영화를 두 번째로 관람하는 경우) 관객들은 비로소 이 영화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현재’ 어떤 학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한 노인의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 속의 세계는 그의 ‘상상’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무엇이 실체를 갖출 수 있는가의 여부는 노인이 그 대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카라디오에서 <오클라호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제이크/노인이 상상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구현되었다는 차원에서 ‘정확’하다. 영화의 구조가 한 캐릭터의 상상,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해 있는 불안정한 세계에 온전히 수렴해 가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모든 것이 정확하고 그만큼 허구적이다.
단역을 제외한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주요 인물 중 영화의 엔드 크레딧에 캐릭터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은 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가 연기한 배역인 ‘제이크’가 유일하다. 최초에 루시로 불렸던 캐릭터는 ‘young woman’, 영화 속에서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제이크의 부모 캐릭터는 ‘mother’와 ‘father’, 그 모든 캐릭터를 만들어 낸 노인은 ‘관리인(janitor)’으로 캐스팅 리스트에 적혀 있다. 노인의 내부와 외부가 번갈아 무대화되는 영화 속에서 그의 내부, 즉 상상 속 이야기에서 젊은 남자만이 유일하게 이름을 부여받았기에 그 남자(제이크)는 노인 본인의 과거를 투영한 인물로 보여진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자들의 세계 속에서 그 유일한 이름은 최소한의 요건, 하나의 정박점을 지시하는 것으로 영화의 제목 <i’m thinking of ending things>에서 ‘i’에 해당하는 인물이 궁극적으로 제이크/노인임을 암시한다. 혼란스러운 서사 구조 때문에 소위 불친절한 영화로 언급되기도 하는 이 영화는 그렇기에 사실 매우 정직한 영화다. ‘i’가 끝내고자 생각하는 것은(ending things ‘with 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누군가와의 연인 관계일 수도 있고, 보다 복잡한 예속의 구조일 수도, 떨쳐버리기 힘든 후회와 기다림의 감정일 수도, 삶 그 자체일 수도 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텍스트이자 이미지인 그 제목을 통해, 아무것도 속이거나 감추지 않으면서 영화 전체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미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엔드 크레딧까지 포함해 보아도 영화의 제목은 맨 앞에 딱 한 번 나타난다. 이언 리드(Iain Reid)의 원작 소설에는 제목의 i가 대문자 I로 쓰여 있지만 영화의 제목에는 i가 소문자로 쓰여있다. 소문자—주체로서의 노인은 ‘끝내기’ 위한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에 그가 자신에게 투사해 온 편린들을 여럿 펼쳐 보인다. ‘루시’가 제이크의 부모 집을 방문해 마침내 지하실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앞서 그녀가 그린 그림으로 타인들에게 소개했던 그림들이 실은 제이크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게다가 그 그림들은 제이크의 온전한 창작물이 아니라 화가 블레이크록(Ralph Albert Blakelock)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때 흘러나오는 루시의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죽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은 진정한 비극이야. 에머슨은 언젠가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행위보다 귀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지.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아.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야. 그들의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고, 그들의 삶은 모방이며, 그들의 열정은 인용일 뿐이지(Most people are other people. Their thoughts are someone else’s opinions, their lives a mimicry, their passions a quotation).”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의(것으로 믿어 왔던) 그림을 저장해 놓았던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루시는 앨범에 더이상 아무런 이미지 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That’s an Oscar Wilde quote”이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말을 인용했던 그 목소리조차 루시/제이크/노인의 생각이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서 ‘i’가 자신의 분신을 구축하는 과정에는 앞 문단의 사례 외에도 수많은 레퍼런스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영화 속 루시의 내레이션과 같이) “황량하고 가슴 아픈 방식으로(in a bleak, heartbroken kind of way)” 아름답다. 노인이 죽은 돼지의 환영을 따라가는 장면과 제이크가 운전했던 자동차가 눈에 완전히 덮여 있는 마지막 장면 등은 ‘끝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 왔던 주체가 소멸했음을 보여준다. 기이한 이미지로 둘러싸인 그 소멸 앞에서 구체적인 ‘희망’의 메시지는 결국 보여주지 않는 카우프만을 고약한 비관론자로 여길 수 있을까? 필요 이상으로 서스펜스 장르의 관습들을 사용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마냥 ‘불쾌하고’, ‘난해한’, ‘괴작’(영화의 제목으로 구글링했을 때 어렵지 않게 수집할 수 있었던 어휘들)으로 평하는 것은 다면체적인 이 영화의 일부분만을 다루는 셈이다. 돼지우리에서 사체의 흔적을 관찰했던 루시는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과 달리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아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며 그렇기에 인간은 희망을 발명해 냈다”고 말한다. 쉽게 희망을 전시하는 일은 불쾌하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명백한 사실들을 감추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거짓된 희망을 첨부하지 않음으로써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서사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비논리적인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형식을 차용함으로서 허구성을 감추지 않는, 허구를 유지하면서 허구가 허구임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우리 행동의 이유는 뭘까요?” <마인드헌터>에서 빌 텐치와 동행한 홀든 포드가 아이오와주 페어필드의 경찰들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화자가 ‘끝내는 것’을 생각하는 과정은 자신이 해왔던 선택과 행동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기억과 사고가 늘 논리적일 수 없기에 그 과정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이는 인터뷰이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그 인물의 심리지도를 그려 가는 <마인드헌터>의 요원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한 인물의 내면, 그가 만들고 살아가는 그 세계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작업을 수행하는 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영화는 그 주인공들의 작업 과정과 그 과정을 포함한 주인공들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마인드헌터>가 인용을 통해 최대한 진짜 같은 허구를 만드는 것을 선택한 반면 찰리 카우프만은 인용의 구조 자체를 색인으로 첨부하여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허구를 선택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서는 이름이 계속 바뀌는 것도 모자라 ‘학교’로 향하는 어둠 속에서 아예 ‘여자친구’ 역의 배우가 바뀌어 버리는데, 이는 ‘악명 높은 자’들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그 범죄자들의 외모와 놀랍도록 비슷하게 연출된 <마인드헌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마인드헌터>에의 극사실주의에도 ‘옥의 티’가 있다. 사실 서두에 언급한 아이스크림 가게의 배경음악은 정확한 인용이 아니다. 빌 텐치 요원은 ‘현재’ 아틀란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 중인데 이 사건은 1981년 5월에 종결된다. “Best that you can do”가 발표된 것이 1981년 8월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