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년간 실종되었던 딸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겪었던 버스 사고의 여파로 눈이 먼 딸은 실종 이후 놀랍게도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딸이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속 시원히 묻지도 못한 어머니는, 식사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가버린 무례한 불청객 때문에 꾹 눌러온 울분을 토한다. “저 사람들은 멋대로 상상하면서 널 다 안다고 생각할 거야.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머니의 절규는 그가 입양 딸 프레이리(브릿 말링)에게 닥친 7년의 일을 어떤 마음으로 다독이고 염려해왔는지를 보게 한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고자 프레이리는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지만, 어딘가 달라져 돌아온 딸이 “저는 오리지널 엔젤(OA)이에요"라고 하는 말을 덥석 받아들일 리는 없다.
<The OA> 시즌1 8부작 중, 7화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짐작건대 어떤 시청자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오리지널 엔젤’을 말하는 프레이리를 보며 실소가 터졌을지 모른다. <The OA>는 프레이리의 아주 긴 고백을 듣는 우리를 서서히 젖어들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화자인 그와 우리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격을 만들기도 한다. 프레이리에 따르면 우리는 일련의 동작들을 통해 가능한 다른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죽음은 더 이상 영원한 무를 뜻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말이 허무맹랑할 수밖에 없는 일차적 이유는 다분히 초현실에 기댄 비과학적 상상이기 때문이고, 그보다 즉각적으로 통로를 여는 동작의 괴랄함 때문일 것이다. 프레이리가 얻은 다섯 가지 동작은 도저히 말과 글로 그려낼 수가 없다. 원을 그렸다가 힘껏 밀어내고, 뭔가를 집어 먹는 듯하다가 몸을 비틀고, 하늘을 보면서 이마에 ‘M’자를 그렸던 손을 쓸어내리고, 진동하는 손가락과 토해내는 탄식, 탄성, 뱀이나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쉿 쉿 하는 소리들… 이루 말하기 힘든 일련의 동작들은 치유의 힘을 가졌다. 그리고 반드시 다섯 가지 동작을 다섯 사람이 진심과 전력을 다해 완수해야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차원을 열어젖혀야 한다면, 인류의 언어나 행동 양식과는 완전히 달라야 할테니 적어도 황당하기만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SF 장르는 피상적이나마 과학의 힘을 빌려온다. 과학이 기초가 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상상한 결과를 믿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이 결여돼 있다면 무엇을 근거로 우리를 작품 내부에 휘말리게 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쥐여줄 것인가. 느리고 장황한 16개 에피소드의 집합인 <The OA>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시청자에게 믿음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즌1에서 사후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려는가 싶더니, 시즌2로 가 보면 평행우주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몇 가지 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평행우주, 혹은 다중우주. 수십 년간 대중매체에 다뤄져 왔음에도 여전히 과용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개념 자체의 신비와 흥미 이상의 것을 창출하기는 어려워졌다. 마블의 멀티버스와 최근 ‘양자경의 멀티버스’까지 무덤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나온 내가 이제 와 2016년에 만들어진 <The OA>를 보면서 허리를 곧추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이 시리즈는 차원 이동에 관한 미스터리를 돕는 두 개의 서브 플롯이 가로지른다. 하나는 아웃사이더의 공동체성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박사 햅(제이슨 아이삭스)과 벌이는 사이코 스릴러다. 프레이리의 고백을 듣는 다섯 명의 아웃사이더는 다들 상처 입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폭력을 일삼는 문제아, 약물 중독자, 트렌스젠더, 이민자 소년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의지를 잃어버린 선생님까지. 이들은 필시 피안의 세계를 탐할 수밖에 없기에 프레이리의 낯선 이야기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물며 프레이리의 양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알 수 없다’라는 감각은 우리를 포함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프레이리의 주장에는 과학도 증거도 없다. 오직 보이지 않는 진리와 확신을 머금고 눈을 반짝이는 프레이리의 강력한 호소만이 주재한다. 침대 밑에서 발견된 책 4권(‘러시아의 소수 집권층’, ‘임사체험 백과’, ‘엔젤의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흔들리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에서는 차라리 프레이리가 꾸며낸 주장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쉽고 분명한 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진리가 아닌 고작 개인의 주장이자 상상이라면, 각종 괴랄한 동작들은 곧 이단의 언어다. 이때 프레이리는 단지 오컬트를 설파하는 전령일 뿐이다. 그러나 인정받지 못한 언어, 외부로 내몰린 존재들이 마침내 기적을 발휘해 그것을 증명해 보이면서 모종의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대개의 이러한 전복의 카타르시스는 우리에게 명료한 해방감을 안기며 보기 좋게 마무리되어 마땅할 텐데 하필이면 그들의 힘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문을 열어버렸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 그들의 단합과 의지로 동작은 수행되었고 프레이리는 ‘여기’의 생을 마감하고 ‘저기’로 떠난다. 하지만 정말 프레이리가 다른 차원으로 떠났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기’의 프레이리는 총상을 입고 사망했을 뿐이며, 그들이 수행한 동작이란 단순한 엽기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의 질서는 조금도 교란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명의 아웃사이더는 프레이리를 보낸 대신 수많은 희생을 피하게 되면서 프레이리의 주장에 더욱 강하게 이끌린다. 몰이해의 장벽과 끊임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 장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거대한 물음표를 던지면서 끝난다. 의문과 호소로서 추동하는 극이 끝내 모두에게 일말의 앎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 광활한 혼란 속에 우리를 빠뜨리고 말았다.
두 번째 서브 플롯에서 드러난 햅과 프레이리의 관계성은 더욱 곤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레이리는 어릴 적 경험한 NDE에 관심을 보인 박사 햅을 우연히 만나게 되자 그의 꾐에 넘어간다. 햅의 연구는 위대한 발견을 위한 희생의 감옥을 필요로 했고, 프레이리를 포함한 다섯 명의 피실험자는 지하실의 투명 부스에 갇힌 채로 7년을 보내게 된다. 사후세계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그의 연구는 이미 연옥에 다녀온 사람들을 수차례 다시 연옥에 보내고 고통스럽게 기록해야만 완성될 수 있다. 사이코 스릴러에 다름 아닌 납치 및 감금의 서사는 시청자가 햅에 대해 현실적인 혐오를 갖기 충분하다. 그런데 몇 번의 탈출을 감행하다 실패하던 프레이리는 다소 의아한 통찰을 얻는다. 실험용 쥐는 스스로를 실험용 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햅의 연구를 도와야 나갈 수 있다는 것. 이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싶지만 실험과 기억 잃기를 반복하던 그들은 어느새 햅이 발견코자 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려 애쓴다. 그 결과 하나둘씩 바로 그! 동작을 얻게 된 것이다. 차원 이동을 위한 동작들은 현실의 언어와 조금도 닮지 않아 그 즉시 낯섦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NDE라는 아주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집단적 기억(동작이 있다는 믿음)이 생성됨을 목격했으니 어쨌거나 우리 역시도 놀라운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한다. 이 시리즈는 과연 그토록 바라던 차원의 너머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3.
꿈은 차원 간의 이동에 매달린 이들에게 이곳과 너머를 연결하는 명백한 매개물로서 작동한다. 꿈은 경험과 무의식이 무작위로 흩뿌려지며 욕망으로 재조합된 현실의 재현이다. 그리하여 필시 ‘과거’를 연상시키곤 했던 정신분석의 꿈과 달리, 여기에서의 꿈은 강력한 ‘예지’의 힘을 가진 꿈으로서 칼 융의 동시성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의식과 물질의 세계가 어떤 형태로든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비한 꿈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부터 꾸어온 프레이리의 총상에 관한 예지몽은 조립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준 꿈이라 말할 수 있을까. 종전의 차원을 ‘차원1’, 프레이리가 떠난 새로운 차원을 ‘차원2’로 명명해보자. 하지만 차원2로 이동한 프레이리는 더 이상 프레이리가 아니다. 버스 사고라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지점에서 갈라져 나온 ‘니나’의 차원이다. 프레이리는 아버지를 잃고 입양되었던 니나가 받게 된 새 이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원2의 니나는 미래의 프레이리가 아닌 동일 선상의 다른 맥락이다. 자신을 ‘메신저’로 표현하기까지 한 또 다른 차원 이동자는 니나의 자아를 지배한 프레이리에게 세계의 공명에 관한 힌트를 들려준다. 여기에서의 마주침은 저기에서도 다른 형태의 마주침으로 발생한다는 것, 바로 세계 간의 공명이다. 이로써 두 세계는 과거나 미래도 아니며 별개의 대립적인 세계도 아닌 공명하는 실재로 판명난다.
차원1에서의 햅과 프레이리의 악연은 차원2에서도 피할 수 없이 반복된다. 다만 그 질긴 인연의 고리를 반드시 악연으로 불러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특이점이 있다. 차원2의 니나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집(The house)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박사 퍼시(햅)을 고용했다. 니나의 지원으로 차원의 비밀을 밝힐 연구에 매진하는 햅. 차원1에서 햅의 비인간적인 행위 때문에 차원2에 다시 맺어진 관계의 양상은 일견 거북한 느낌을 주지만, 그러나 정말로 이 관계가 거북하고 난해하기만 한가? 차원1의 프레이리는 햅을 증오하면서도 햅의 가장 중요한 피실험자이자 동료였다. 프레이리는 다른 임사 체험자들을 이끌면서 그의 연구에 필요한 도움을 자의와 타의의 경계면에서 제공해 왔다. 차원2에도 그 미묘한 관계성의 기시감이 출몰한다. 어쨌거나 둘은 같은 목적을 가진 협력 관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시즌2는 탐정 카림(킹즐리 벤어디어)을 찾아온 어느 할머니가 손녀 미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시작된다. 미셸의 흔적을 좇다가 이상한 집(The house)으로 통하는 게임을 추적하게 된 카림은, 미셸이 게임의 마지막 장에서 사라진 영상을 보고선 직접 게임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침내 그가 최종 심급에 해당하는 ‘장미 창문’을 열게 되었을 때 우리도 그토록 바라던 창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한다. 그건 차원2에서 발견된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며, 차원2의 니나가 기계의 동작을 통해 건너간 세 번째 차원이기도 하다. 시즌1의 결말처럼 시즌2의 결말 역시 카타르시스의 지점에 도달하지만 목격한 진실이 안겨준 혼란의 폭은 너무도 크다. 다시 차원 이동에 성공한 퍼시와 니나는 세트장 위의 배우가 되어있고 그들은 실제 배우의 이름인 제이슨과 브릿으로 불린다. 세트를 떠도는 미셸은 미셸이 아니라 벅(다섯 아웃사이더 중의 트렌스젠더)의 모습이며, 카림이 지난 밤 써 두었던 메모는 촬영장의 소품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게 무슨 <트루먼 쇼>식 결론인가 싶다가도 둘을 나란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The OA>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 확장한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 문을 열고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트루먼의 결말은 여기에 없다. 말하자면 <The OA>는 모든 것이 ‘진짜’라고 말하면서, 끝이 아닌 ‘시작’을 연거푸 제공한다. 끝은 상정할 수조차 없다. 심지어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차원3의 브릿(프레이리)과 제이슨(햅), 이 난해하고 난감한 인연의 고리를 한 차원의 시야에 묶인 우리가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The OA>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은 아득하고 알 수 없는 영역을 더듬는 느낌과 컬트적인 믿음의 언저리에 있다. 시즌2에 등장한 게임의 심볼처럼, 세계는 무수한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차원을 그리는 <The OA>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영화가 아닌 시리즈라는 형식과 공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The OA>의 시즌3 제작이 무산되었던 것처럼, 시리즈라는 형식은 완벽한 밑그림을 가지지 않으면서 그 운명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산업적인 특징이 있다. 말장난 같은 얘기지만 그런 형식과 내용이 공명하면서 <The OA>는 일부의 신도들을 남기고 떠났다. 채색되지 않은 이후의 이야기는 아득한 너머에 던져졌고, 아무리 손에 넣으려고 해도 완성된 도면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시리즈의 완결을 보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놀람과 탄식과 동물의 울음이 함께 어우러진 다섯 가지 동작은 바로 그런 진리의 뒤편에 남길 수 있는 최후의 잔여물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