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Unbelievable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피해 현장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이다. 이 시리즈는 성폭행 사건과 경찰 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그런만큼 피해자들의 진술이 포함된다. 그 진술을 음성으로만 들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더불어, 당시 현장에 대해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시청각적 기억들을 말하기 힘들게 한다. 어떤 재난이든, 사건 이후에 남은 트라우마와 기억의 파편이 재난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에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같은 작품들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재현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라는 무척 까다로운 문제와 부닥칠 수밖에 없는데, 이 시리즈는 그 어려움을 (대단치 않더라도) 꽤 현명하게 해결한다. 자극적인 폭력과 여성의 나체 재현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폭력과 피해가 발생했고 그 기억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일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가 윤리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방식으로 피해 당시 현장을 재현한 범형을 만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 그것뿐이었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단지 윤리적 당위성의 힘으로만 구동되는 작품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장르적 구성을 성취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정성과 효과성은 문제-해결이라는 틀을 경유하며 형성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윤리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해서 발생했을 문제-해결의 틀을 되짚어 보려 한다.

우선 이 시리즈의 전체 서사를 살펴보자. 2008년, 친부모 없는 십대 여성이자 청소년 보호 프로그램의 돌봄을 받고 있는 마리 애들러(케이틀린 디버)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들어온 침입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한다. 마리는 (남성)경찰의 거듭된 진술 요구로 인하여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구술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그녀의 진술에 의문을 품고, 반복된 진술 요구에 시달린 끝에 마리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자술한다. 그리고 시간은 3년이 더 흐른다. 2011년, 형사 캐런 듀발(메릿 웨버)은 불법 침입 강간 사건을 맡게 되고, 우연한 계기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레이스 라스무센(토니 콜렛)이 비슷한 사건을 수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두 (여성)경찰은 자신들의 사건이 다수의 지역에 걸친 연쇄 강간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공조 수사에 착수한다. 처음에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던 수사는 끈질긴 조사, 여러 협력, 우연한 계기들 끝에 범인 체포로 종결되고, 전혀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마리 애들러의 사건도 수면 위에 드러나 마리의 억울함도 해소된다.

이제 이 시리즈를 문제-해결이란 도식으로 나누어 보자. 그러기 전에 먼저 디제시스 내부의 문제-해결과 디제시스 외부의 문제-해결을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디제시스 내부의 문제-해결’은 말 그대로 시리즈 안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것을 말한다. 즉, 마리의 문제-해결, 듀발과 라스무센의 문제-해결이다. 그것과 달리 ‘디제시스 외부의 문제-해결’은 창작자와 관람자들의 문제-해결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시리즈를 윤리적으로 온당하게,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장르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로 만들기 위해 거쳐야 했던 문제-해결이며,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이 시리즈를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의 문제-해결인 것이다. 이렇게 등장인물, 창작자, 관람자의 문제-해결이라는 3항은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으며 서로의 문제-해결에 영향을 준다.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다뤄야 하기에, 창작자들은 피해 재현의 윤리적 온당성에 대한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앞서 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또 다른 문제가 산적해 있다. 나에게 가장 뚜렷하게 다가왔던 것은 소위 ‘연대’ 형성의 문제였다. 이는 이 시리즈가 사회적 의미를 좀더 확장해가는 과정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체로 여성이라는 점, 많은 경우에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로 위치한다는 점, 성관련 사건을 대하는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 실증적 사례가 많다는 점, 지배적 담론 아래에서 여성 또한 남성중심적 고정관념을 내면화하기도 한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가 다른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난점을 포괄하는 일이며, 그래서 연대 또한 마냥 낭만적인 것이 아니며, 그런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상호 생존의 기반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들이 이 시리즈가 풀어야할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위에서 제시된 난점이 피해자-조력자 간의 연대와 공감으로 시각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업인-직업인의 연대,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의무감보다 우선되는 직업적 소명 의식들의 유대로 시각화된다는 점이다. 그 시각화의 주요 제재가 되는 이들이 바로 듀발과 라스무센이다. 마리의 이야기로 에피소드 1을 시작한 이 시리즈는, 에피소드 2에서 듀발을 등장시키며 본격적으로 형사물로 바뀐다. 이때 우리는 에피소드 1과 반복되면서도 달라지는 지점을 눈과 귀로 분명히 확인한다. 여기서 듀발은 (마리가 아닌) 어느 강간 피해자를 만나는데, 자연스럽게 우리는 듀발이 그를 대하는 방식과 에피소드 1에서 남자 경찰들이 마리를 대하는 방식을 비교하게 된다. 달리 말해, 이 시리즈의 창작자들이 그 비교를 분명하게 이끌어 낸다.

듀발은 신중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진술 요구가 피해자에게 주는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아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는 에피소드 1에서 마리의 경우를 통해 그 심리적 부담감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그 비교의 조건이 성립되지 않고 듀발의 사건으로 바로 넘어왔다면 어쩌면 우리는 듀발의 신중함을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이해했다고 해도 그 반대편의 경솔함을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혹여나, 적어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여자 경찰의 소심함’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창작자들은 비교의 조건을 먼저 제시해두고서 우리에게 듀발이란 경찰의 행위와 신중함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 시리즈는 이렇게 듀발을 처음 소개한 뒤, 곧 이어서 라스무센을 우리와 만나게 한다. 라스무센은 조심스러워 보이는 듀발과 달리 매우 저돌적인 인물이다. 아마도 이는 대조되는 효과를 통해서 극적 흥미를 돋우면서도, 수사 과정에서 저돌성과 신중함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고 긍정적 상승효과를 일으키는지 알리기 위해서 일 테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저돌성이 수사에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듀발의 신중함이 수사의 필수 요소가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듀발에게 허위경보를 제공한다. 한 밤 중에 범죄 현장 근처를 기웃거리는 수상한 남자가 있고, 라스무센은 그를 주시하다가 급기야 긴급하게 체포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연 보호에 열성적인 광적 운동가일 뿐이었으며, 라스무센의 수사에 불평을 쏟아낸다. 여기서 라스무센은 만약 남자의 여자 형제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다면 수사관이 어떠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저돌성을 변호한다. 남자는 그것이 일리있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짓고, 라스무센과 남자의 대화를 듣고 보면서 우리 또한 그 저돌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신중함과 저돌성이라는 두 축을 먼저 제시한 뒤에야 듀발과 라스무센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두 (여성)형사의 만남이 아니라, 신중한 형사와 저돌적인 형사의 만남을 지켜보게 된다. 서로 다른 성격의 직업인들의 의기투합 과정이 감정적 유대에 의한 결합보다 더 우선하여 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속력이다.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듀발과 라스무센은 쉽게 손잡을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라스무센은 듀발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않고, 듀발은 퉁명스러운 라스무센이 불만스럽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을 성급히 화합시키지 않는다. 일단 수사에 착수하고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화합하거나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수사는 진행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 시리즈가 선택하는 것은 라스무센에 대한 듀발의 존경심이다. 그런데 그 존경심은 말이나 감정적 표현보다 듀발의 몸짓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듀발은 무뚝뚝한 라스무센의 태도에도 오히려 그를 따라다니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수사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껌딱지처럼 라스무센의 뒤를 쫓는다. 그의 그런 모습은 듀발이 라스무센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라스무센의 불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라스무센을 믿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어찌보면 듀발의 행동은 이상해 보인다. 짝사랑 상대를 좇는 것처럼 졸졸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듀발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하게 하는 일화가 설명된다. 듀발은 형사 초년생 시절에 사건을 해결하고 의기양양하게 범죄 현장을 나서는 라스무센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듀발에게 라스무센은 일종의 롤모델인 것이다. 이렇게 이 시리즈의 창작자들은 처음에 우리에게 라스무센의 ‘비호감적’ 퉁명스러움, 듀발의 ‘이상한’ 따라다님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의기투합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전하면서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전한다. 그저 감정적 연대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친절하거나 친절하지 않다는, 피상적 문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수사를 해결해야 하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품 안팎으로부터 당위적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여받은 두 형사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선배 형사에게 배우고픈 후배 형사의 열의, 다른 무엇보다 ‘문제 해결’이 우선인 직업인의 집중력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배제될 수 없고, 의기투합이 모든 것을 연결시키지는 못하며, 여성이란 성별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것이 또 다른 큰 문제이다. 듀발과 라스문센의 문제인 동시에,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창작자들의 문제다. 그래서 라스무센은 범인을 잡기 위해 원칙을 깨뜨린다. 법무부에서 일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경찰 내부 파일을 입수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감정적’이라 말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강간범 ‘개자식’들을 잡기 위해 라스무센이 그런 선택을 내린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라스무센에게 그와 같은 선택을 내리게 함으로써, 냉철해보이는 라스무센조차 감정적 동인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는 점을 전한다. 또한, 그 선택이 추후에 라스무센을 경찰 내부 고발자로 만들어 다른 경찰에게 모욕을 당하게 하며, 그렇게 되는 것이 경찰의 남성중심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우리도 알게 된다.

라스무센의 경우처럼 듀발의 감정도 꽤 기묘한 순간에 전달된다. 유사한 강간 사건이 발생했던 어느 지방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수사원이 한 명 가야 했는데, 듀발이 선택된다. 장면은 수사팀 사무실에서 듀발의 차 안으로 넘어가고, 이때 듀발은 혼자 있기 적적했는지 음악을 튼다. 그리고 그 음악에 맞추어 흥얼거리고 몸을 흔든다. 연출자는 이 장면을 꽤 길게 보여주기를 택한다. 그래서 우리는 듀발의 뜬금없는 노래와 춤을 생각지도 못하게 오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듀발이 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고독함 속에 놓인 직업인임을 상기한다. 함께 팀을 이루긴 하지만 결국 단독으로 처리해야 할 몫이 있고, 그렇게 혼자 다 하는 듯하면서도 팀의 조력이 필요하며, 팀원들과의 부침도, 혼자 해결하는 외로움도 의기투합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인물들은 바로 그렇게 각자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연대를 이룬다. 이 시리즈에서 범인이 잡히고 난 후 창작자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는 마리와의 연대일 것이다. 마리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 ‘믿음’과 관련된다. 마리의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고, 마리는 자신의 경험을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말하지 못하고 듣게 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었다. 그럼으로써 마리는 자신 뿐만아니라 주변인들도 (어쩌면 이 사회마저도) 믿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자상하게 챙겨주던 남자친구와는 헤어지고, 자신을 걱정해주던 위탁 부모와도 소원해진다.

우리는 그런 마리가 듀발과 라스무센의 활약 덕분에 위로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는 강간 피해자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리는 사회적 전언으로 이 시리즈를 확장할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마리를 그 두 경찰과 마주치게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성취한다. 감정적, 물리적, 시간적 거리감이 좁혀져야만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연대를 형성하고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거리가 멀고 시간이 좀 지나더라도 그럴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연대’를 최우선 가치에 놓고 그것에만 의존하여 서사가 구동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직업인들의 활약에 집중하면서 이 시리즈의 서사 전체를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로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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