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 중요한 축인 토마스(오스틴 버틀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녀석들의 졸업백서>(이하 ‘졸업백서’) 에는 곳곳에 죽음이나 부재가 도사린다. 하이틴 로맨스 장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단어들은 영화를 추동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물론 <월플라워>(2012)와 같은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졸업백서>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기존 하이틴 로맨스와는 다른 방식의 관람을 요구한다.
<졸업백서>의 주연 4인방은 무척 이상하다. 모두 20대 후반의 배우로서, 10대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해버린 네 배우들은 천연덕스럽게도 자신을 10대라고 우기며 각자의 능수능란한 연기를 뽐낸다. 재빠르게 오가는 티키타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 순간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졸업백서>가 ‘사라진 남성들’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 말이다.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의 존재를 삭제한다. 릴리(루시 헤일)의 아버지는 원래부터 없었고, 토마스의 죽음에 반응을 보여야 할 클로이네 가족이나 아멜리아(알렉산드라 쉽), 레베카(아콰피나)의 가족은 영화에서 소거되면서 아버지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4명의 여성은 마음껏 마약을 흡입하고 남성들을 탐하며 섹스하지만, 그것과 비례하여 부재한 남성들로 인한 상실감에 고통받는다. 거기에서 비롯한갈등, 이어지는 인물의 성장. <졸업백서>는 전형적인 하이틴 장르의 성장 서사를 따르지만, 남성들의 부재를 ‘극복하는 여성들’에 방점을 찍으며 성장의 형태를 살짝 뒤튼다. 루시가 파티에서 만난 마이크(보넌 루빈스타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이후에 진행되는는 시퀀스는 이를 보여주는 핵심적이면서도 논쟁적인 부분이다. 극 중 내내 토마스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에 사로잡혔던 루시는 그제서야 여성의 부재를 감각한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부재로 분노하던 루시는 결국 다시 그녀들로 인해 그 사건을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구원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까. ‘남아있는 여성’들이 있어 비로소 행하여지는, 루시 자신에 대한 구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