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와 저기의 사이에서

Hit Man

이 영화는 “이 이야기는 게리 존슨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어느 정도 실화(somewhat true story)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픽션은 모두 얼마간 각색을 거치기 마련이지만, 대개는 굳이 저렇게 적나라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건만, <히트맨>은 이 자막만으로 영화의 태도라고 할지… 일종의 톤앤매너 같은 것이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맞으면 ‘내 말 맞았지? 그렇지만 아님 말고’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왠지 그게 밉지 않다.

대관절 그래서 ‘어느 정도’ 실화라는게 무슨 말인가? 어디까지 실화라는 걸까? 나더러 이 픽션을 믿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링클레이터는 시작부터 게임을 벌인다. 그런데 이 모호함은 단점이 아니라 <히트맨>을 지탱하는 강렬한 유희적 기반이 되어준다.

<히트맨>의 가장 놀라운 면 중 하나는 주인공 게리 존슨을 연기한 글렌 파웰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기본적으로 글렌 파웰은 미남 배우다. 그가 <탑건: 매버릭>에서 섹시하고 의리 넘치는 공군 파일럿을 훌륭하게 소화한 바 있음을 잊지 말자. 그런데 <히트맨>의 게리 존슨은 이혼한 너드이자 오타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대담한 가짜/진짜 킬러가 되어가는 게리는 흉터와 문신 가득한 마초부터 냉혹한 수트남, 러시아계 마피아, 홈리스스러운 암살자 등 갖가지 사연 많은 인간들로 분한다. 그리고 결국엔 남녀노소 누구나 반할 매력남 론이 된다. 그런데 그 모든 역할들이 과할 정도로 그럴듯 하다보니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디까지가 게리의 진짜 면모이고 어디부터 연기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연기하는 글렌 파웰은 문자 그대로 가면을 쓰듯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자 그럼 여기부터는 이 영화의 실화가 ‘어느 정도’까지 바탕에 깔려 있는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게리는 정말 이걸 즐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자신이 킬러가 됐다고 착각하기 시작하는 걸까? 영화가 아닌 실제 게리 존슨도 이렇게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까? 가짜 킬러라는 매력적인 소재는 이렇게 사회적 가면과 모호함의 유희 사이에서 모종의 근원적인 질문을 길어올린다. 링클레이터가 의뭉스럽지만 뒤돌아보면 마음에 남는 대사를 쓰는데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창작자라는 점을 유념해보면, 게리가 점점 가짜 킬러 역할에 심취하며 내뱉는 말들이 점점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 그래서 어느 정도 실화는 정말 어느 정도 일까. 히트hit하지 않는 <히트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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