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이후의 삶

Nagi’s Long Vacation

일본에는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 쿠우키오요무)라는 표현이 있다. 상황이나 집단의 분위기를 섬세히 감지한 뒤, 직접적인 언어 없이 기대되는 행동을 파악하고 이에 자신을 맞추는 사회적 능력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눈치를 살핀다’에 맞닿을 테니, 특별히 일본만의 특징이라 할 필요는 없겠다. 유목과 개척 중심으로 발달해온 서구권과 달리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에 기반했던 동아시아에는 일찍이 협동이라는 긴장 섞인 특징이 개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현대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눈치를 읽고 공기를 읽는 능력은 경우에 따라 중요한 사회적 덕목으로도 여겨진다.

2019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나기의 휴식>은 바로 그 공기를 읽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을 좇는 세밀화다. 주인공 나기는 평범한 직장 여성으로, 사회와 직장 내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기를 읽는다. 억압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기는 패닉에 휩싸여 쓰러진다. 이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나기의 휴식>이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나기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아니 극중 출연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둘러쌓여 있음을 지속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스파이의 아내>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지식인의 무표정을 훌륭하게 내비친 바 있었던 배우 타카하시 잇세이는 여기서 표정의 끝과 끝을 오가며 테마를 구체화하는데, 그자체가 <나기의 휴식>을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식도락 힐링물과는 전혀 결을 달리하게 만드는 미장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기존과는 다른 새 환경에서 나기가 자신과 달라보였던 이들이 얼마나 자신과 닮았는지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나기의 휴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다룬다. 쿠로키 하루, 타카하시 잇세이, 나카무라 토모야, 카라타 에리카 등의 배우들이 보이는 호연은 주변인물들이 일순간 중심을 차지하기도 하는 선뜩한 리듬을 선사하며 주조연이라는 경계를 허문다. 그래서인지 <나기의 휴식>을 다 보고 나면 ‘나기’와 ‘휴식’이라는 말의 의미가 넓어지고 흐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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