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로 넘쳐나는 한국에서는 조용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영원한 항해자 에테르나우타>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발간된 전설적인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2025년 4월 30일에 공개되어 87개국에서 관람 1위를 차지하였으며,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한 자연 재난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에서는 스페인어 콘텐츠가 큰 반응을 얻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데(<종이의 집> 정도가 드물게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어가 쓰이는 데다가 제작 국가와 이야기 배경이 한국 사람에게는 콘텐츠 변방인 아르헨티나인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별함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한겨울일 때도 대체로 영상권을 유지하는 아르헨티나에 갑작스럽게 기후 변화가 찾아와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독성까지 지니고 있어 사람들을 고립시킨다는 설정은 기존 지식 범위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 등장인물들이 그동안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생존을 위해 여러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생존자끼리 갖가지 사투를 벌이고 여러 양상을 만드는 모습 또한 보편적이면서도 예측하기 힘든 서사를 즐기게 한다. 영웅적 행동으로부터 비롯하는 동일시를 쉽게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면모다. 또한, 시즌1 중반 이후부터 자연 재난 이외에 또 다른 적대자가 드러나고, 그 적대자가 예상 밖의 장소에서 출몰한다는 점은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렇게 <영원한 항해자 에테르나우타>는 인류세 시기의 인간이 마주할지 모를 위기를 가족 생존 서사와 연관시키며 보편적 정서를 확보하는 동시에, 어딘가 본 듯하면서도 낯설고 무언가 닮았으면서도 기이한 존재들의 등장(혹은 귀환)을 통해 인류가 작금에 처한 위기를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냉전의 공포감이 기저에 깔려 있던 유명 코믹스의 세계관이, 인류세의 공포감이 드리우고 새로운 세계 대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다.